1990년대 GPU로 패러다임
전환 반도체 넘어 AI디지털 생태계 선도
작고 단순한 조직·신속 소통 강조
‘실패=혁신의 원천’ 강력 권장도
韓 기업들 수직적 위계 돌아볼 때
전환 반도체 넘어 AI디지털 생태계 선도
작고 단순한 조직·신속 소통 강조
‘실패=혁신의 원천’ 강력 권장도
韓 기업들 수직적 위계 돌아볼 때
현재 가장 혁신적 기업은 AI 혁명의 플랫폼 엔비디아일 것이다. 엔비디아와 시가 총액 1, 2위를 다투는 MS의 종업원이 22만명, 애플이 15만명인데 엔비디아는 3만명도 안 되는 작지만 거대한 기업이다. 엔비디아는 흔히 신생 기업으로 오해받지만 실은 아마존, 구글보다 먼저인 1993년 창업됐다. 게다가 창업 이래 32년째 최고경영자(CEO)인 젠슨 황은 적지 않은 나이인 62세다.
엔비디아 탄생과 GPU를 통한 성장
엔비디아는 대만계 미국인 젠슨 황이 두 동료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창업했다. 이들은 비디오 게임의 기반인 그래픽 가속컴퓨팅을 미래 기술 발전의 핵심으로 확신했다. MS오피스와 윈도우가 갓 출시된 1990년대 초반으로서는 파격적 선택이었다.
엔비디아는 1995년 출시한 첫 그래픽 가속기 N1이 표준 호환성 문제로 실패하면서 파산 위기에 빠졌다. 이때 불가피하게 정리해고를 단행했는데 젠슨 황은 다시는 해고 없는 기업이 되겠다고 결심했고, 현재까지 그 약속을 지켰다. 거래 파트너 세가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난 엔비디아는 호환성을 대폭 향상시킨 후속 모델 NV3을 혁신적 공법으로 개발해 성공을 거두며 그래픽의 선두로 부상했다.
결정적 전기는 1999년 개발한 최초의 GPU 지포스256이다. 그래픽 처리장치 GPU는 하나의 프로그램이 다양한 작업을 동시에 처리하는 병렬연산 기술에 기반한다. 인텔이 주도하던 중앙처리장치 CPU가 연산을 순차적으로 처리하는 기술이라면 GPU의 병렬연산은 다양한 작업을 동시 처리해 시간을 대폭 줄이므로 높은 속도의 복잡한 연산을 요구하는 분야의 새로운 기술 기반이 됐다. 엔비디아는 기존 CPU의 성능 개선이 아닌 미래형 반도체인 GPU로 패러다임을 전환한 것이다.
젠슨 황은 GPU를 복잡한 대규모 연산이 필요한 AI 개발에 활용하도록 2006년 최초의 GPU 프로그래밍언어 CUDA를 개발자에게 무료 배포했다. 이를 계기로 GPU는 AI가 쓰이는 다양한 분야의 컴퓨팅 기반이 됐다. 그 결과 AI 칩 점유율이 90%를 넘었고, AI 혁명은 엔비디아 없이는 상상할 수도 없게 됐다. 특히 2022년 말 챗GPT가 촉발시킨 생성형 AI 혁명으로 엔비디아의 위상은 확고해졌다. 생성형 AI는 스스로 데이터를 수집해 학습함으로써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자율형 AI인데, 개발과 작동에 필요한 초고성능 GPU를 엔비디아가 독점했던 것이다. 그 결과 엔비디아는 AI 생태계 전체의 플랫폼이 됐다.
광속의 자기파괴적 혁신
엔비디아는 극도로 미래지향적이다. 회사 이름의 엔비가 ‘넥스트 버전’의 약자다. 로고 또한 미래를 보는 눈을 상징한다. 전략은 카테고리 혁신이다. 혁신은 기술, 제품, 프로세스 등 다양한데 그중 카테고리 혁신은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제품이나 기술을 창조하는 것이다. 카테고리 혁신은 기존 경쟁자가 없기 때문에 성공하면 상당 기간 독점적 온리원의 지위를 누릴 수 있다. 예를 들면 K뷰티의 리더인 아모레퍼시픽이 글로벌 선도 기업으로 급성장한 기반은 새로운 화장품 카테고리인 쿠션을 개발해 세계 표준으로 확립했기 때문이다. 인텔이 CPU 용량증가 혁신에 몰두하던 1990년대 중반 엔비디아는 당시 시장도 없던 GPU라는 새로운 반도체 카테고리를 만드는 혁신을 시도한 것이다.
최근 AMD 등 후발주자가 등장했지만 엔비디아의 온리원 지위는 굳건하다. 기반은 자신의 기존 경쟁우위를 스스로 파괴하는 후속 모델을 남보다 먼저 출시하는 자기파괴적 혁신이다. 온리원 유지에는 압도적 속도가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엔비디아는 광속 전략을 강조하며 빛의 속도로 자신의 기존 모델을 파괴하는 혁신을 계속했다. 그 결과 반도체 후속 모델 출시 간격 원칙이 인텔의 ‘무어의 법칙’에서 ‘황의 법칙’으로 바뀌었다. 엔비디아는 반도체를 넘어 전체 AI와 디지털 생태계의 발전을 선도하고 있다. 젠슨 황이 강조하듯 GPU 반도체를 플랫폼으로 ‘모든 국가와 과학 분야, 클라우드를 작동시키는 전 세계 AI의 엔진’ 역할을 하며 거대한 생태계를 이끌고 있는 것이다.
수평적 원팀 조직과 지적 솔직함
3시간만 자면 충분하다며 하루 14시간 일하는 젠슨 황은 극도로 현장중심적이어서 사무실도 없이 어디서나 일한다. 본사는 미래형 반도체 개발에만 선택·집중하고 비핵심 분야는 과감하게 아웃소싱해 시장 가치에 비해 놀랍도록 작은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복잡한 절차와 문서 작업을 없애고 이메일로 핵심만 교환하는 신속한 전사 소통을 추구한다.
회사 조직을 ‘원 아키텍처, 원 팀’으로 단순화한 엔비디아는 경계 없는 신속한 소통과 협력을 강조한다. 모든 구성원은 한팀으로 하나의 비전을 추구한다. 자신을 포함한 개인의 정보 독점을 막기 위해 CEO 미팅도 반드시 복수가 참여해 전사에 공유한다. 일반적 CEO는 10명 내외 인원만 직접 관리하는데 비해 젠슨 황은 60여명과 정기적으로 직접 소통하며 현장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엔비디아는 실패를 혁신의 원천으로 강력하게 권장한다. 실패를 통한 신속한 학습과 혁신의 중심에는 엔비디아가 ‘지적 솔직함’으로 부르는 문화가 있다. 지적 솔직함은 실패를 숨기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분석해 개방적으로 공유함으로써 조직 전체가 끊임없이 학습하고 혁신하는 기반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즉 실패가 감추는 대상이 아니라 혁신의 원천으로 권장되는 지적 솔직함이 엔비디아의 학습 문화인 것이다.
또 다른 미래 패러다임 전환이 관건
글로벌 AI 생태계에서 엔비디아의 압도적 지배력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 확실하다. 최근 AMD가 엔비디아의 GPU에 도전하는 경쟁 제품을 내놓자 엔비디아는 즉시 더 짧은 주기에 성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킨 블랙웰 GPU로 응수하며 압도했다. 그러나 인텔도 얼마 전까지 최고의 혁신 기업이었으나 CPU에서 GPU로의 카테고리 혁신에 대응하지 못해 무너졌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먼 미래는 당연히 미지수다.
엔비디아는 62세의 적지 않은 나이에도 가죽점퍼만 고집하는 젠슨 황의 독특한 이미지가 상징하듯 실제 기업 나이와 상관없이 스타트업 같은 혁신성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런 관점에서 엄격한 수직적 위계질서를 기반으로 규모 성장을 추구하다 2015년 이래 심각한 한계에 봉착한 우리 기업들도 오래됐지만 신생 기업처럼 젊고 작지만 거대한 글로벌 지배력을 발휘하는 엔비디아를 공부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