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국정기획위원회는 남북관계 정상화와 교류협력 재개를 추진해 왔다. 남북의 과도한 정치·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단절과 대립을 극복하는 일에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의욕이 지나쳐 자칫 북한의 요구를 잘 들어줘야 남북관계가 발전한다는 ‘착한 사람 강박증(Nice Guy Syndrome)’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최근 통일부의 명칭을 ‘남북관계부’나 ‘한반도부’로 변경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들이 나오고, 각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는 북한이 우리의 주적인가 아닌가에 대한 논란도 제기됐다.
북한이 두 국가론을 주장하고 우리 주도의 통일을 극도로 경계하는 마당에 굳이 통일이라는 단어를 부각해 평양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 우리에게 ‘위협’이 되지만 ‘적’은 아니라는 해석은 일견 타당한 듯하다. 하지만 과연 이러한 주장들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론의 핵심은 ‘두 국가’보다는 ‘적대’이고, 김정은은 두 국가론의 배경으로 우리가 북한을 변화시키려 함으로써 흡수통일을 기도해 왔다고 주장했다. 대북 관여정책(engagement policy)의 핵심은 개혁·개방, 북한 비핵화 등 평양의 변화로, 이것 없이는 진정한 한반도 안정과 평화는 불가능하다. 북한은 남북 접촉면 확대로 우리의 정보와 문화가 북한 내에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려 하고, 이는 우리의 가치와 체제가 지닌 구심력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결국 북한은 우리가 자신들의 방식대로 변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고, 그 안에는 자유민주주의, 인권, 자유로운 정보 유통 등이 포함되는데 우리는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
적은 나에게 위협을 가하는 세력에 대한 현실적 인식을 반영한다. 현재 나의 안정을 해치고 나에 대한 점령이나 공격을 의도하는 세력은 나의 적이다. 다만 적의 개념이 과거와 미래까지 규정하지는 않으며, 유럽 대부분 근대사가 이야기하듯 적과 아군은 수시로 바뀌었다. 현재의 적을 미래에도 철저한 증오와 타도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과도한 대응이지만, 미래의 관계에 대한 희망적 사고를 기초로 상대방에게 호감을 줄 수 있는 단어만 사용해야 한다는 관념은 그 이상의 위험성을 지닌다.
우리를 ‘불변의 주적’이라고 규정하고 남북 간 단절과 증오를 확대재생산하는 상대를 현실적 ‘적’이라고 이야기하기를 꺼리는 이상한 상황은 한반도 문제의 해결을 남북관계 개선으로만 풀려고 하는 집착과 연결된다. 현재 한반도 및 동북아 지역 구도는 남북한 관계 축선과 지역 축선을 모두 활용해야 해결의 답이 나온다. 북한까지도 북·러 밀착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개입, 그리고 ‘원양작전함대론’을 통해 주변국들에 대해 자신의 가치를 끊임없이 부각하는 책략을 취하고 있다. 남북 대화 및 교류협력 창구를 복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현실적 위협을 직시하고 동맹과 우방국과의 협력을 통해 평양이 대화와 비핵화의 장으로 복귀하도록 만드는 일도 못지않게 시급하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2024년 통일의식조사’에 따르면 북한을 지원 및 협력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응답이 2000년대 초반 이후 50%를 꾸준히 넘는다. 하지만 북한 정권 신뢰도는 2018~2019년을 제외하면 30% 정도가 일반적이고, 지난해에는 20%대인 26.5%로 떨어졌다. 많은 국민이 남북관계에서 포용과 신뢰의 대상을 북한 정권이 아니라 북한 주민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이야기고, 북한 정권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광범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평양의 예상 반응에만 몰입하면 오히려 평화와 통일은 더 멀어질 위험이 있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