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업 부담에 극단적 선택하는
교육지옥 속 우리의 청소년들
한강 작가 매일 밤 울면서 쓴
‘동호’의 억울한 영혼 떠올라
교육개혁, 말뿐인 토론회 대신
죽음의 오징어게임 끝내는 것
교육지옥 속 우리의 청소년들
한강 작가 매일 밤 울면서 쓴
‘동호’의 억울한 영혼 떠올라
교육개혁, 말뿐인 토론회 대신
죽음의 오징어게임 끝내는 것
이 산길로 그 소년이 갔을까? 마지막에 무슨 생각을 했을까? 서점에서 참고서 5권은 왜 샀을까?
분당 율동공원 근처 새마을연수원 야산을 지난해 10월에 올라갔다. 이 야산에서 2021년 분당 서현고 3학년 김휘성군이 19세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도대체 왜? 며칠 밤 그 소년이 와서 무척 괴로웠다. 억울하고 또 억울한 영혼. 하지만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영혼.
내가 이 야산을 오른 이유는 세 가지 연결된 사건 때문이다. 2022년 11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라는 교육단체는 헌법재판소 앞에서 대입 상대평가가 위헌이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을 제기하는 날 나는 학계 대표로 발언했다. 이윽고 교사인 김영식 좋은교사운동 대표의 발언이 있었다. 김 대표는 김휘성군을 언급하며 마지막에 참고서를 산 이유가 학업에 대한 불안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키가 크고 아주 잘생긴 학생이었다.
지난해 10월 나는 경기도교육청에서 대입 자문을 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또 대입이라니. 수십 년 동안 대입을 고쳐봤지만 교육 지옥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 나의 책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결론이다.
간곡히 부탁하길래 할 수 없이 요청을 수락했다. 하지만 할 말이 없었고 하고 싶은 말도 없었다. 교육청이 마련한 공개 토론회에서 “당신들은 틀렸다”고 말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다.
마침 당시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소식으로 나라 전체가 들썩였다. 광주항쟁 당시 숨진 소년은 한강의 소설과 함께 우리에게 왔다. 소년이 정말 왔다. 우리의 가슴 속으로. 나는 ‘소년이 온다’를 다시 한 번 자세히 읽어봤다.
나도 ‘문두스’라는 소설을 쓴 작가다. 작가는 주인공에게 ‘빙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만 한다. 톨스토이의 위대함이란 중년의 남성이 안나 카레리나라는 중년의 여성에게 빙의를 할 수 있는 능력 때문이다. 한강 작가는 ‘동호’에게 빙의를 했기에 매일 밤 울면서 소설을 썼다. 일종의 접신이자 초혼이다. 억울하고 또 억울한 영혼.
소설을 덮자 다른 소년이 내게로 왔다. 2년 전 헌법재판소 앞에서 들었던 김휘성군. 그래, 한번 가 보자. 그래서 그 야산을 올랐다. 햇빛은 밝았으나 음산했다. 그 소년이 올랐던 길을 따라 올라가니 착잡했다.
경기도교육청에 가서 그 소년 이야기를 하고 돌아왔다. 당신들은 결코 교육 개혁을 할 수 없다고. 정녕 교육 개혁을 원한다면 토론회가 아니라 그 야산을 한번 올라가 보라고 말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전국 교육계를 뒤흔들고 있다. 책을 읽지 않은 전지(全知)의 존재들이 저마다 자신의 주장이 옳다며 칼럼을 쓰고, 페북질을 하고, 유튜브에서 선동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일이자 좋은 일이다. 하지만 민주적으로 토론을 한다고 교옥 지옥을 끝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징어 게임에서 성기훈(이정재)은 죽음의 게임을 끝내자고 사람들을 설득해 보지만 다수결 투표와 토론에 의해 게임은 끝까지 계속된다. 각자의 이해관계로 인해 다수는 오징어 게임을 계속하고 싶어한다.
한국 교육의 현실도 마찬가지다.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핵심 중 핵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책 서문에 나와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의도는 교육의 오징어 게임을 끝내는 것이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바로 성기훈이다. 당신은 다양한 의도와 이유를 들어 교육의 오징어 게임을 계속하길 원한다. 그러는 사이 부산에서 3명의 여고생이 학업 스트레스로 아파트에서 동시에 뛰어내렸다.
얼마간 언론에서 관심을 가졌지만 지금은 조용하다. 한 해 약 150명의 학생이 학업 스트레스로 자살한다. 매년 교실에서 이태원 참사가 벌어지는 것이다. 억울하고 또 억울한 영혼. 하지만 곧 잊혀질 영혼.
서울대 10개 만들기 논쟁은 계속될 것이다. 책을 읽지 않은 전지의 존재들이 저마다 왜곡된 논리와 주장으로 TV, 신문, 유튜브를 달굴 것이다. 궁극적인 질문은 다음과 같다. 당신은 정말 교육 개혁을 원하는가. 당신은 진정 교육의 오징어 게임을 끝내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억울하고 또 억울한 그 소년과 그 소녀에게 ‘빙의’를 해봐야 한다. 빙의의 순간 가슴이 무너지며 보일 것이다. 소년이 온다. 소녀가 온다. 그리고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온다.
김종영
경희대 교수
사회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