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과 숲속에 모여 소박한 파티를 했다. 각자 음식들을 조금씩 준비해와 둘러앉아 함께 나눠 먹으며 끝없이 대화를 이어갔다. 야외 테라스의 지붕 위로는 이슬비가 장대비로 변해가고 있었다. 우리의 대화는 저마다의 어린 시절 여름방학 이야기로 흘러갔다. 서로 나이 차이도 있다 보니, 여름방학의 양상이 서로 너무도 달랐다.
나는 동네에 북천이라 불리는 물가에서 친구들과 물놀이를 하는 게 일상이었고, 한 번쯤 가까운 바다로 온 가족이 야영을 하러 갔다. 개학을 하면 여름을 즐기며 지낸 반 친구들은 모두 새까맣게 변한 채로 교실에 앉아 있었다. 누군가는 여름마다 혹독하게 배앓이를 했던 것을 꼽았다. 지금도 찬 음식과 해산물을 조심한다고 했다. 누군가는 가족들과 유럽여행을 갔던 기억을 꺼내놓았다.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그때의 사진들이 기억을 소생시키고 있다고 했다. 그때 사온 기념품 하나는 아직도 자신의 책장 앞에 빛바랜 채로 놓여 있다고 했다.
누군가는 영어 어학연수를 다녀오는 것이 여름방학의 대유행이었다고 했다. 매일매일 한나절의 영어수업을 받으며 방학을 보냈고 그때 배운 영어가 아직도 몸에 배어 있다고 했다. 누군가는 여름이면 친척집에 보내졌다고 했다. 할머니의 말벗이 되어주며 받았던 사랑을 세세히 기억한다고 했다. 유독 너그러웠던 사촌들 덕분에 매일매일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었다고 했다.
누군가는 여름방학은 유독 외로웠다고 했다. 여름철에 더 바쁜 민박집을 운영하는 부모님 덕분에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서 매일매일 책상에 앉아 일기를 열심히 썼다고 했다. 덕분에 글 쓰는 직업을 지금 갖게 된 것 같다고 했다. 누군가는 어느 여름방학을 수재민으로 지냈다고 했다. 물에 잠긴 집과 대피소에서 지낸 시간과 복구를 하기 위해 애썼던 이후의 시간을 세세히 들려주었다. 장대비가 거세지고 빗소리가 커져서 서로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될 즈음, 우리는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김소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