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 산실 상동교회 “복음으로 새 역사 쓴다”

입력 2025-07-21 03:18
이성조 상동교회 목사가 지난 17일 서울 중구 예배당에서 교회의 과제와 비전을 설명하고 있다.신석현 포토그래퍼

서울 중구 남대문로 상동교회는 1888년 창립 이후 한국 근현대사에서 독립운동의 요람이자 민족 운동의 중심지였다. 을사늑약으로 절망에 빠진 민족에게 소망을 전했던 전덕기(1875~1914) 목사와 상동파 인사들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다. 이성조(53) 담임목사는 과거의 영광을 기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는 교회를 꿈꾸고 있다.

절망의 끝에서 피어난 희망

지난 17일 교회 목양실에서 만난 이 목사는 상동교회 역사의 핵심을 ‘절망의 끝에서 일어선 희망’으로 정의했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모든 사람이 끝이라고 절망했을 때 일어섰던 사람이 바로 상동교회의 전덕기 목사님이었습니다.”

윌리엄 스크랜턴 선교사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전 목사와 ‘상동파’ 민족운동가들은 헤이그 밀사 사건을 주도했고 독립운동가 이회영 권사는 가족 재산을 팔아 만주의 신흥무관학교를 세웠다.

이 목사는 “스크랜턴은 복음을 전했을 뿐 아니라 그 능력을 전 목사와 교인들이 삶에서 실제로 경험하도록 이끌었다”며 “환난 중에 인내를, 인내 중에 연단을, 그리고 연단을 통해 얻는 진짜 소망을 그들에게 허락하셨다. 이것이 바로 상동교회의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복음의 능력으로 다음 세대 세우기

전 목사의 실천하는 신앙의 핵심은 복음의 능력으로 다음세대를 세우는 것이었다. 공옥학교 공옥여학교 상동청년학원을 세워 구한말 절망에 빠진 수많은 청년을 독립운동가로 교육하고 인재를 배출했다. 현재 상동교회는 삼일학원과 협성대를 운영하며 그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이 목사는 숭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에모리대에서 목회학 석사, 보스턴대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보스턴에서 아름다운교회를 개척한 뒤 한국에서 ‘토기장의집 교회’를 16년간 섬긴 후 2019년 상동교회에 부임했다.

그는 올해부터 담임목사로서 직접 학교에 나가 학생들에게 복음으로 꿈과 소망을 주는 사역을 시작했다. 그는 전통 교회의 현실적 한계를 솔직히 인정하며 “시간이 지나면서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진정한 신앙교육보다는 교육 행정과 운영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고 밝혔다.

부임 6년째인 그는 역사가 오래된 교회의 딜레마를 경험했다. 수많은 기념일과 행사를 준비하다 보면 교회의 모든 에너지가 거기에 소비되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내린 결단이 있다. 역사를 기념하는 교회가 아니라 역사를 살아내는 교회가 되자는 것이다.

“역사가 무엇입니까. 바로 히스 스토리(His Story) 즉 하나님의 이야기입니다. 그 놀라운 이야기를 지금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가야 합니다.”

그는 보다 본질적으로 말씀과 예배로 돌아가려 애쓰고 있다. 주일 말씀 본문을 교인 모두가 함께 기도하며 정하고 매일 성경을 통해 성도들이 말씀의 능력을 경험하도록 돕고 있다.

세상을 울리는 이야기 만들어야

선교 140주년을 맞이해 이 목사는 되묻는다. ‘140년 동안 세상 속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의 이야기를 어떻게 다시 세상에 써 내려갈 수 있을까.’

그는 한국교회 초기 부흥의 비결을 세상을 변화시킨 실제적 이야기에서 찾았다. 마부 이자익이 지주를 제치고 먼저 장로가 된 금산교회, 백정 출신 박성춘이 왕손보다 먼저 장로가 된 승동교회의 이야기처럼 말이다. “전 목사님도 남대문에서 숯을 팔던 사람이었는데 스크랜턴 선교사님이 그에게 담임목사 자리를 물려주었습니다.”

이 목사는 1990년대부터 한국 기독교가 쇠퇴한 원인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더 이상 세상에서 회자될 수 있는 감동과 울림이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교회 안에만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교회가 세상에 주어야 할 것은 돈이나 자선이 아니라 ‘놀라운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한국교회를 향한 그의 메시지는 명확했다. “140주년, 150주년 기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결국 우리 안의 잔치로 끝나는 것 아닐까요. 이제는 교회 안에 갇힌 복음의 능력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는 “한국교회는 이제 역사를 기념하는 교회가 아니라, 새 역사를 써 내려가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며 “역사는 기념하는 것이 아닌 살아내는 것이다. 살아내는 자를 통해 새 역사는 지금도 쓰여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목사는 “상동교회가 절망 속에서 희망을 전하던 그 날처럼 오늘 이 시대에도 하나님의 살아 있는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공동체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