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이만기, 이봉걸과 함께 ‘3이(李) 시대’를 이끌었던 이준희가 ‘모래판의 수장’으로 변신했다. 1982년부터 5년간 천하장사에 3차례(1984, 1985, 1987년) 오르고 백두장사를 7차례를 지낸 전설이다. 현역 시절 실력만큼이나 훌륭한 매너를 갖춰 ‘모래판의 신사’로 불리며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다. 지난 14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회관에서 만난 이준희 대한씨름협회장은 “늘 다니던 대회지만 회장이 되고 나니 책임감이 다르다”고 말했다. 충북 보은군에서 열린 위더스제약 2025 민속씨름 보은장사씨름대회를 막 마친 참이었다. 곧바로 17~23일 전남 장흥군에서 열리는 제62회 대통령기전국장사씨름대회를 앞두고 짬을 냈다.
지난 1월 취임해 반년을 보낸 이 회장은 “어떤 사람들은 저보고 회장 되더니 변했다고 한다. 당연히 변할 수밖에 없다. 식구를 먹여 살려야 되니까 변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웃어 보였다. 그러면서 “걱정이 태산 같다”며 “머릿속엔 미래를 그려보면 잘 될까 안 될까 하는 생각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대회를 빠짐없이 챙기는 이 회장은 현장에서 잔소리쟁이로 불린다. 그는 “우스갯소리로 잔소리한다고 이제 나오지 말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도 회장이 나와 있어야 분위기가 잡힌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대회를 운영하는 이들이 조금만 더 진지한 마음으로 임하면 달라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지난해 12월 제44대 회장 선거에서 총 224표 중 140표(62.50%)를 얻으며 당선됐다. 류재선(22.32%), 황경수 전 회장(14.29%) 등 다른 후보를 크게 압도한 결과다. 첫 천하장사 출신 수장에 대한 씨름인들의 기대감이 그만큼 컸음을 보여준다. 이 회장은 “내일 붙어보면 또 다를 수 있다. 운이 좋았다”고 몸을 낮추면서도 “변화를 바라는 마음, 협회가 지금보다 나아지지 않겠느냐는 마음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씨름 레전드 이 회장은 모래판 외길을 걷고 있다. 화려한 선수 생활을 마친 후 친정팀 일양약품에서 코치로 지도자의 길에 들어섰다. LG투자증권 황소씨름단과 신창건설 코뿔소씨름단에서 지휘봉을 잡았다. 이후에는 민속씨름 경기위원장, 협회 경기운영총괄본부장 등 행정 경험도 쌓았다.
여러 의견을 조율해 한번 변화를 이끌어 보고 싶다는 마음이 그를 출마로 이끌었다. 일생을 씨름인으로 살아온 그는 출마 당시 “살아오며 축적한 역량을 소수의 기득권을 위함이 아니라 모두가 공정하게 존중받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에 쏟아부으려 한다”고 약속했다. 생활 체육부터 엘리트 체육까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게 조화를 이루는 게 그의 가장 큰 역할 중 하나다.
수장으로서의 행보도 모래판 위에서의 모습과 닮았다. 이 회장은 “어느 날 갑자기 확 놀라게 할 생각은 없다”며 “갑자기 없는 거를 만들고, 실행 안 되는 거를 발표하고 싶지 않다. 예측할 수 있게 차근차근 가는 게 중요하다. 2~3년 뒤에 보면 ‘좀 바뀌었네’라고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말했다.
다만 씨름판의 분위기는 이 회장의 선수 시절과는 사뭇 다르다. 라이벌 이만기와 대결을 벌이는 날이면 공중파 방송사의 9시 뉴스도 뒤로 밀리곤 했었다. 모래판 위에서 엎치락뒤치락하는 영웅들을 보기 위해 남녀노소 불문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서울 장충체육관을 꽉 채우고도 남아 ‘집에 가서 TV로 시청하라’는 안내를 해야 했다. 사람들이 역대 천하장사 이름을 꿰고 있던 시절이다.
1990년대 후반 IMF 사태가 터지면서 씨름판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실업팀들이 잇따라 해체되는 상황에서 내부 파벌싸움까지 벌어졌다. 자기보다 더 큰 덩치의 선수를 기술로 무너뜨리는 모습에 열광하던 팬들은 체중으로 버티는 씨름으로 바뀌자 하나씩 떠나기 시작했다.
씨름판에서 영광을 누리고, 씨름이 쇠락하는 모습까지 곁에서 지켜본 이 회장은 “1980년대에 씨름이 가장 잘 나갈 때 안주했다고 본다. 미래에 대한 준비가 조금 소홀했지 않았나 싶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비슷한 시기 출범한 프로야구가 현재 천만 관중을 몰고 다니는 모습은 더 뼈아프다. 이 회장은 “씨름은 답보 상태다.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은 채 횡보 중”이라며 답답해했다.
이제는 미래에 대해 준비를 해야 한다. 이 회장으로선 씨름인을 늘리는 게 가장 큰 과제다. 저출산으로 초등학교 팀 선수 수가 매년 1~2명씩 빠지고, 대회 출전팀 수가 줄어들고 있는 것도 걱정이다. 이번 선거에서 이 회장이 ‘유소년 씨름 저변 확대’ ‘생활 속 스포츠로서의 씨름’을 공약으로 내건 이유이기도 하다.
이 회장은 “어떻게든 씨름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야 한다. 야구 교실처럼 ‘나 어렸을 때 씨름해봤어’란 말이 나올 수 있어야 한다”며 “우리끼리만 하면 아무 소용없다. 어디 가서 씨름했다 해도 아무도 모르지 않겠나. 씨름판이 잘 돼 있으면 어디 가서 씨름했다 그러면 목에 힘이라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강조했다.
선배를 밀어낼 후배도 많이 배출돼야 한다. 이 회장은 “팬들은 더 좋은 기술도 보고 싶고 새로운 스타도 보고 싶다. 앞에 했던 사람보다 못하면 자꾸 앞에 사람만 찾게 되고 그러다 보면 안 보게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그게 쉽지는 않다. 학교 성적처럼 씨름도 전년보다 못하다 싶으면 그 뒤에 좋은 선수가 안 나타난다”고 말했다.
임기 중 장충체육관에 모래판을 다시 한번 깔아보고 싶은 마음도 크다. 민속씨름이 태어난 곳에서 영광을 되찾아본다는 계획이다. 이 회장은 “씨름은 재미없다는 생각이 한 번이라도 경기장을 찾는다면 달라질 것”이라며 “관중몰이에 실패하더라도 장충체육관에서 다시 한번 해보고 싶은 마음이다. 80년대 정도 위상까지 되돌려놓고 싶지만 당장 안되더라도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로화도 궁극적인 목표다. 이 회장은 “지금도 연봉도 주고 계약금도 다 주지만 표면화가 안 돼 있다 보니 초중고에서 실감하기가 어렵다”며 “아이에게 씨름을 시켜야 할지 걱정하는 부모들의 불안감을 덜어주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40년 넘게 씨름인으로 살아온 이 회장은 후배들에 대한 애정도 크다. 이 회장은 “아무도 안 다쳤으면 싶고 경쟁에서 잘 살아남아서 도태 안 되고 잘 올라가길 바라는 마음”이라며 “매일 보는 얼굴들인데 그중에 1등 자리는 몇 명 없는 게 안타깝기도 하다”고 말했다.
정신영 기자 spiri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