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17일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이 위법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판단하면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무죄를 확정했다. 두 회사 합병이 승계 목적만으로 이뤄졌다거나 이를 위해 분식회계 등 불법행위가 벌어졌다는 검찰의 공소사실이 증명되지 않았다고 본 하급심 판결을 인정한 것이다.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의 불기소 권고에도 기소를 강행했던 검찰은 무리한 수사·기소였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이 회장은 승계를 위해 지주회사 격인 삼성물산 지분 확보가 필요해지자 2015년 삼성물산과 주주의 이익과 관계없이 제일모직과의 합병을 결정했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 회장에게 유리한 합병을 위해 제일모직의 주가는 올리고 삼성물산 주가는 낮추는 부정행위가 있었다는 것이 공소사실의 요지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제일모직의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가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삼성바이오가 상장 직전인 2015년 자본잠식 위험에 처하자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의 회계 기준을 부당하게 변경해 장부에서 4조5000억원을 부풀렸다는 혐의다.
하지만 1심은 “이 회장의 승계만이 합병의 유일한 목적이라 단정할 수 없다”면서 무죄를 선고했다. 2심도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해 “종합적으로 회계부정의 고의가 드러났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박영수 특검팀은 삼성이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에게 말을 건넨 것이 삼성물산 대주주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청탁한 대가라고 보고 이 회장을 기소했다. 이 회장은 이 혐의로 2021년 1월 징역 2년6개월을 확정받고 같은 해 8월 가석방됐다. 하지만 이 사건 2심은 “검사의 주장은 ‘여러 간접 사실을 모아 보면 알음알음 청탁된 것 아니겠냐’는 것”이라며 “추측과 시나리오에 의해 형사처벌을 인정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검찰의 기소 강행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대검 수심위가 2020년 6월 수사 중단과 불기소를 결정했지만 검찰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경제범죄형사부 부장검사로 기소를 담당했던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2심 패소 후 “국민께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특히 삼성바이오와 에피스 서버 등 검찰이 제시한 증거가 위법하게 수집됐다는 판단도 유지했다.
양한주 윤준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