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학창 시절 뮤지컬 ‘대장금’ 오디션을 봤어요. 바로 떨어진 덕분에 이후 성악에만 매진할 수 있었죠. 하하”
스타 소프라노 황수미(39)가 16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2025 롯데콘서트홀 마티네-황수미의 사운드트랙’ 기자간담회에서 공연 프로그램을 설명하던 중 뮤지컬에 대한 추억을 털어놓았다. 그는 “당시 성악 콩쿠르와 다른 현장 분위기에 압도된 데다 연기 훈련이 제대로 안 돼 지문을 어색하게 읽었다”고 회고했다.
롯데콘서트홀은 2016년 개관 때부터 ‘엘콘서트’라는 이름으로 마티네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대니 구에 이어 하반기에는 황수미가 엘콘서트의 기획자로 참여해 연주할 곡과 게스트를 선정했다. 황수미의 마티네 공연은 9월 18일, 10월 16일, 11월 20일 세 차례 열린다. 그는 “이전까지 연주자로서만 무대에 서다가 공연 기획과 출연자 섭외까지 맡은 엘콘서트는 내게 큰 도전이었다”면서 “내 이름을 건 공연인 만큼 관객에게 충실한 무대를 보여주고 싶다”고 밝혔다.
‘황수미의 사운드트랙’은 각각 ‘송’(song)’ ‘오페라’ ‘시네마’의 3가지 테마로 열린다. 국내외 가곡으로 채워지는 9월 18일 공연에는 피아니스트 안종도와 테너 김우경이 함께한다. 그리고 10월 16일은 모차르트 오페라 ‘코지 판 투테’를 콘서트 오페라 축약 버전으로 선보인다. 피아니스트 방은현, 테너 김효종, 바리톤 이동환 등이 출연한다. 끝으로 뮤지컬과 뮤지컬영화 속 넘버들을 선보일 11월 20일 공연에는 음악감독 이성준, 뮤지컬배우 카이가 출연한다. 이번 마티네 공연에서 눈길이 가는 것은 황수미가 뮤지컬 넘버들을 부르는 마지막 공연이다. 요즘 지명도 있는 성악가들도 뮤지컬에 종종 출연하고 있지만, 황수미는 클래식 콘서트와 오페라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정통 클래식만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이번 마티네 공연을 통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면서도 “요즘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클래식 음악과 그렇지 않은 음악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나 역시 연주자로서만 활동한다면 무대에서 펼쳐 보이고 싶은 게 많다. 하지만 내가 연주자인 동시에 교육자이다 보니 학생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입장에서 무대 선택을 보수적으로 하고 있다”고 피력했다.
서정적인 목소리의 리릭 소프라노인 황수미는 서울대 음대 학부와 동 대학원을 거쳐 독일 뮌헨 국립음대 최고연주자과정을 졸업했다. 2014년 세계 3대 음악 콩쿠르 중 하나인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한 그는 독일의 메이저 오페라하우스 가운데 하나인 본 극장 전속 가수를 거쳐 유럽의 여러 오페라극장에서 주역으로 활약했다.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세계적인 가곡 반주자 헬무트 도이치의 연주로 데뷔음반 ‘SONG’을 발매한 그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올림픽 찬가를 불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지난 2022년 경희대 교수로 부임한 그는 현재 국내 오페라계에서 백작부인(피가로의 결혼), 파미나(마술피리), 레오노라(일 트로바토레), 류(투란도트), 미미(라 보엠) 등 리릭 소프라노 배역의 캐스팅 영순위다.
“제 역량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니면, 저는 오페라 캐스팅 제안을 거절합니다. 아마 이게 (캐스팅 제안을 많이 받는) 비결 아닐까 싶습니다. 유럽에 있을 때 아시아인이다 보니 ‘나비부인’의 초초상 캐스팅 제안을 많이 받았는데, 단기간에 스타가 될 기회였지만 체력적으로나 목소리에 대한 부담 때문에 모두 거절했습니다. 저는 젊고 건강한 목소리로 오랫동안 연주를 이어가고 싶거든요. 다만 시간이 지나 목소리가 무거워지면 ‘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 같은 역할에 도전하고 싶습니다.”
그는 오페라 외에도 오라토리오나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등의 솔리스트로 자주 무대에 서고 있다. 내년 초에는 일본 도쿄에서 말러의 교향곡 8번 ‘천인교향곡’ 솔리스트로 출연이 예정돼 있다. 하지만 다소 이른 나이에 국내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클래식과 오페라의 본고장인 유럽에서 활동이 중단된 것에 대해 아쉬움은 없을까.
“유럽 오페라하우스에서 작품당 연습 기간이 6~8주인데요. 방학에 맞춰서 출연 일정을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학기 중에 들어오는 오페라 제안은 고사하고 짧게 할 수 있는 콘서트만 수락하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에 들어온 만큼 국내 클래식계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게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디에서 제 목소리가 쓰이든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성실하게 임하고 있습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