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달과 무지개

입력 2025-07-19 00:31

최근 운전을 하던 중 보름달을 보게 됐다. 열대야의 밤하늘에 뜬 둥근 달은 장관이었다. 마치 거대한 황금 덩어리가 하늘에 솟은 듯 환하게 빛났고, 황홀한 모양은 신기할 정도였다. 압도적인 크기 때문인지 차에 함께 탔던 아이가 먼저 달을 발견하고 탄성을 질렀다. 달은 도로의 진행 방향에 따라 위치를 바꿔가며 눈을 즐겁게 했다. 차량은 마침 올림픽대로 여의도 부근을 지나고 있었다. 빌딩 사이로 높게 뜬 열기구 ‘서울달’도 보였는데 인공이란 게 얼마나 부질없는가를 실감할 수 있었다.

7월의 보름달은 벅문(Buck Moon)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북미 원주민들이 수사슴(buck)의 뿔이 여름철 급속히 자라는 데서 이름이 유래됐다고 한다. 자료를 찾아보니 북반구 여름에는 달이 매우 낮은 고도로 이동하면서 지평선 가까이 오래 머무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날 마주친 달은 평소보다 낮게 떠 있어 빌딩 사이나 먼 산으로 숨었다 보였다를 반복했다. 겨울의 보름달이 영롱하게 빛나며 차가운 겨울밤을 나타낸다면 한여름 보름달은 뜨거운 햇살과 열기를 머금은 듯 발갛게 빛났다.

그날 밤 벅문을 목격한 사람들은 저마다의 SNS에 경쟁하듯 사진을 올렸다. 감탄과 놀라움, 신비롭다는 반응과 함께 각자의 자리에서 찍은 사진이 많았다. 어떤 이는 작품 사진에 가까울 정도로 달의 자태를 아름답게 포착했다. 인공지능의 시대, 최첨단 과학 시대에도 이렇게 자연 현상은 여전히 지구인들을 놀라게 하며 열광케 한다. 제아무리 도시의 야경이 아름답고 고성능 LED 전광판이 선명하게 비춘다 한들 저 크고 밝은 달과 비교할 수는 없다.

이번 주엔 달뿐 아니라 무지개도 만났다. 며칠 전 오후 흐리고 비가 오던 날 잠깐 갠 하늘에 거대한 무지개 기둥이 나타났다. 벅문을 우연히 본 것처럼 무지개도 예기치 않은 순간에 눈앞에 그 위용을 드러냈다. 파란 하늘이 회색 구름을 밀어낸 자리에 선명한 7가지 색깔이 하늘에 솟아 있었다. 인도 위를 걷던 사람들은 저마다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놀라운 풍광 앞에서 행인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무지개는 하늘에 떠 있는 빗방울에 햇빛이 굴절되며 우리 눈에 보이는 현상이다. 그러나 단순히 기상 현상으로만 설명하기엔 너무나 장엄하다. 시인 유치환은 하늘로 통하는 문으로 노래했다. ‘행길에는 이웃들/ 언제 다 나와 하늘 우러러 선 가운데/ 이 무슨 뜻하지 않은 복된 소식이라오 (…) 반공중엔 제비떼 쌍쌍이 올라 떴는데/ 아아 거룩할세라 오색도 영롱히/ 때 아니 열린 하늘 문(門) 한 채.’(‘天路’에서)

인류는 오래전부터 자연과 그 현상을 문학과 신화에서 다양하게 표현했다. 달은 풍요의 원천이나 상징을 표현했고 달이 차고 기울고 차는 주기와 관련해서는 시간의 척도나 죽음, 불사와 관련지었다. 무지개 역시 사나운 폭풍우에 이어 나타나는 자비로운 신을, 하늘과 지상 사이의 경계선에 걸친 형상에서는 신과의 연결을 상징했다.

현대인 역시 마찬가지다. 달과 무지개가 보여주는 변화무쌍한 모습에 인간으로서 경외감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럽다. 대자연의 향연에 아무 감정이나 느낌도 없다면, 어쩌면 자신의 무뎌진 마음 상태를 점검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벅문과 무지개의 출현을 단지 천문학과 지구과학의 현상으로만 치부해버릴 수 없다. 신이 없다고 말하는 시대다. 종교는 한낱 인간의 상상이라는 주장이 공공연하게 나온다. 그러나 자연이 보여주는 광대함은 이런 주장을 의심스럽게 한다.

무신론 철학자였다가 “신의 부재는 입증되지 않는다”며 신의 존재를 받아들인 영국의 앤터니 플루는 그의 책 ‘존재하는 신’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자연법칙, 목적론적 구조를 가진 생명, 그리고 우주의 존재는 그 자체의 존재뿐만 아니라 세계의 존재까지 설명하는 초월적 지성의 빛 아래서만 설명될 수 있다.” 구약성경 시편(27:4)은 이 초월적 지성의 빛을 ‘하나님의 아름다움(Beauty of God)’이라 표현했다.

신상목 종교국 부국장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