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성처럼 등장한 신인 그룹
정체는 AI 기술로 만든 밴드
예술·기술 어떻게 공존할까
정체는 AI 기술로 만든 밴드
예술·기술 어떻게 공존할까
최근 전 세계 음악계를 떠들썩하게 한 이름 가운데 벨벳 선다운(The Velvet Sundown)이 있다. 4인조 사이키델릭 록밴드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들은 지난달 5일 13곡을 담은 데뷔 앨범 ‘플로팅 온 에코스(Floating on Echos)’와 함께 혜성처럼 나타났다. C.C.R.(Creedence Clearwater Reviva)을 비롯한 ‘그 시대’ 사이키델릭 밴드 음악을 그대로 닮은 음악에 앨범 커버마저 ‘그 시대’ 전설로 불리는 디자인 그룹 힙노시스(Hipgnosis)를 연상시키는 초현실주의 추상을 내세웠다.
운 좋게도 머지않아 반응이 왔다. 대표곡 ‘더스트 온 더 윈드(Dust on the Wind)’가 입소문을 타고 몇몇 플레이리스트에 포함되며 청취자 수와 조회수가 급격히 늘었다. 데뷔 한 달도 되지 않아 세계적인 음악 서비스 스포티파이 월간 청취자 수 100만여명을 모았고, 스웨덴에서는 스포티파이 ‘바이럴 차트’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누가 봐도 주목받는 루키의 길을 걷는 이들이 아무래도 수상쩍다는 의심이 불거진 건 그즈음부터였다. 신인 밴드임에도 라이브 이력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고, 그룹은 물론 멤버 개인 인터뷰도 전무했다. 공식 SNS에 올라온 사진의 손가락 모양이나 마이크 줄 위치의 어색함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늘었다. 소란이 커지자 밴드는 SNS를 통해 ‘우리는 진짜’라며 항변했지만, 쏟아지는 의문에 결국 자신들의 정체를 밝힐 수밖에 없었다.
많은 이들이 추측했듯 벨벳 선다운은 AI 기술로 탄생한 밴드였다. ‘(우리는) 완전한 인간도 완전한 기계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항변에도 글로벌 음악 서비스 디저(Deezer)는 ‘AI가 100% 생성한 콘텐츠는 허용하지 않겠다’며 이들의 음악을 사이트에서 삭제했다. 벨벳 선다운은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난 14일 3집 ‘페이퍼 선 리벨리온(Paper Sun Rebellion)’을 발표했다. 한 달 반 사이 13곡씩 꽉꽉 채운 정규작을 무려 세 장이나 발표한 셈이다.
여전히 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요즘 주위 사람들과 자주 나누던 대화가 자꾸 떠올랐다. 과장이 아니라 정말 두 명 이상만 모이면 “우리가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과 한숨 사이 놓인 문장을 내내 토로했다. 대부분 음악, 영상, 글 외에도 창작이라는 커다란 우산 아래 놓인 수많은 분야에서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삶을 녹여온 이들이었다. ‘창작의 고통’이나 ‘그분이 오신다’는 말로 창작의 어려움을 농담 따먹던 이들이 이제 그 농담조차도 무겁게 느껴지는 공기 속에서 불투명한 미래를 매 순간 불안해했다.
하기야 불안 정도에서 그치면 다행이다. AI로 직접적인 생계의 위협에 맞닿은 이야기를 주위에서 얼마든지 들을 수 있는 요즘이다. 아직 시험 단계에 놓인 서비스가 많은데도 시장은 당장이라도 내일 모든 게 바뀌어 버릴 것처럼 출렁댄다. 과장을 보태 지금 문화예술계에서는 AI가 붙지 않은 기획은 어떤 지원이나 투자도 받기 어렵다. 마치 몇 년 전 불꽃처럼 타올랐다가 잿더미처럼 사라져 버린 메타버스 열풍을 보는 듯한 기시감이다. 기술은 거들 뿐, 좋은 문화란 오랜 시간 숙성되어 영혼을 울리는 존재여야 한다는 말이 속도와 효율 앞에서 한없이 낡고 고루한 존재로 전락하는 모습을 보는 건 순수하게 괴롭다. 그런 것들에 기대 평생을 빚져 온 사람으로서 더더욱 그렇다.
앞으로도 벨벳 선다운 같은 사례는 또다시 등장할 것이다. 실제로 스포티파이를 비롯한 대부분의 음악 서비스는 디저와 달리 이들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지는 않고 있다. 시대의 흐름이라는 투다. AI 기술은 더욱 정교하게 발전할 것이다. 그를 막을 명분을 찾기도 쉽지 않다. 그렇다면 고민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예술과 기술은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가. 세상에서 가장 비효율적인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오늘도 답이 없는 물음표를 띄운다.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