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소고기 내우외환… 관세 낮추기 ‘성동격서식’ 총력전

입력 2025-07-17 00:02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밝힌 상호관세 유예 시한인 8월 1일(현지시간)이 보름 앞으로 다가오면서 정부가 협상 총력전에 돌입했다. 관세·비관세 부문 협상은 물론 안보 분야까지 ‘홀 패키지’로 묶어 일괄 타결에 나선 정부는 분야별 ‘성동격서’ 방식으로 실무 협상에 나서고 있다. 국방비 지출 확대를 감수하고 비관세 장벽을 일부 완화해서라도 미국이 부과한 관세율 인하를 끌어내는 게 기본 골격이다. 이를 통해 관세 인하 폭 극대화, 비관세 장벽 타격 최소화, 안보 분야의 ‘윈-윈’을 이끌어내는 게 정부의 최종 협상 목표다.

비관세 장벽에 대한 미국의 요구는 30개월령 이상 소고기 수입 등 농축산물 시장 개방 확대, 온라인 플랫폼 규제 완화 등 디지털 무역장벽 해소, 자동차 시장 개방 확대 등으로 요약된다. 우리 정부는 분야별 경쟁력을 면밀히 분석해 협상에 나서되 산업별 타격을 최소화해야 하는 상황이다.


미국은 30개월령 이상 소고기 수입 금지 해제를 강하게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관계자는 “미국은 한국 소고기 생육 시장 수출국 중 1∼2위를 다투고 있어 생육 시장에는 불만이 없다”며 “주로 월령이 30개월 이상인 소고기로 만드는 가공식품은 월령 규제로 시장이 위축됐다고 생각하고, 집요하게 요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통상 당국은 소고기 규제 완화를 협상 카드로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축산업계 반발이 극심한 데다 국민 반발도 커 실제 주요 협상 의제로 거론될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평가다.

미국은 사과·블루베리·체리 등 ‘신선과일’ 검역 완화도 압박하고 있다. 농가 피해를 막기 위해 한국의 검역이 엄격하게 관리되면서 미국이 수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농축산업에 정통한 여당 의원은 “신선과일은 우리 과일의 경쟁력이 좋아 큰 타격이 없을 것이다. 규제 완화 가능성이 있다”고 관측했다. 미국은 유전자변형(LMO) 감자 규제 완화도 요구하고 있다. 감자는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수입국이 미국으로 일부 조정되는 차원에서 규제 완화가 크게 문제 될 게 없다는 평가다.

쌀 시장 개방은 사실상 ‘수용 불가’다. 쌀 수입은 미국과 양자 협상만으로 조율할 수 없다. 쌀은 세계무역기구(WTO) 협상에 따라 미국 태국 호주 베트남 중국 등 주요 쌀 수출국에 48만톤의 의무 물량을 수입하고, 이외 물량은 513%의 고관세를 적용하기로 합의돼 있다. 이에 양자 간 협상 테이블에 오를 가능성은 작다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미국은 자동차에 대해 배기가스 환경규제 완화도 요구하고 있다. 정부는 한국 자동차의 경쟁력이 높아 규제를 완화해도 미국 차의 대규모 판매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보는 분위기다. 미국은 플랫폼법 규제 완화, 위치 기반 데이터 반출 허용도 요구할 가능성 있다. 여당은 디지털 플랫폼 시장 지배력 남용을 규제하고 중소 디지털 기업과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온라인플랫폼법 도입을 추진해 왔다. 협상 과정에서 해당 법안 내용이 조정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또한 그동안 안보상 이유로 수용이 거부됐던 고정밀 지도 데이터 해외 반출의 경우 이미 상업용 위성 서비스가 확산된 상황이어서 재검토될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반대로 조선·제조업 등 첨단 제조업 분야 협력 강화를 지렛대 삼아 비관세 장벽에서도 ‘내주는 것’을 최소화하는 전략을 펼 전망이다. 국내 조선·반도체 산업의 비교우위를 활용해 미국이 산업적 경쟁력을 잃은 분야의 ‘재건’을 돕는다는 것이다.

대미 투자 확대도 정부가 쓸 수 있는 카드다. 정부는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개발 프로젝트 참여를 압박하는 미국 요구에 일단 기초 자료를 요청한 상태다. 추후 한국 기업이 사업에 참여하거나 어려울 경우 미국산 가스 수입을 확대하는 등 다른 방안이 마련될 전망이다.

안보 분야는 ‘윈-윈’이 목표다.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을 대상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5% 국방비 증액을 요구했다. 정부는 그중 직접 군사비에 할당된 3.5% 수준으로 국방비를 단계적(10년) 증액할 수 있는지 검토하고 있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직접 군사비 외에 간접비도 점진적으로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대신 협상 과정에서 한·미 방산 협력 강화를 통해 방산 무기 수출을 늘리는 등 역청구서를 제시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및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등 한국의 장기적 과제 또한 협상 과정에서 대두할 가능성이 있다.

대신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하는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대폭 증액’에 대해선 그동안의 합의 틀을 유지하는 데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미국의 주한미군 철수·감축 등을 비롯한 재배치 요구도 방어해야 한다. 정부 당국자는 “패키지 협상에서도 통상 분야의 성과 없이 안보 협의를 통해서만 딜을 만들 순 없다”며 “관세를 최대한 낮추기 위해 어떤 부분을 주고받을 것인지를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현재 협상 대상 품목의 관할 정부부처 사이에 이견이 좁혀지지 않는 상태다. 농산물·디지털 분야 관련 정책을 주관하는 농림축산식품부와 국토교통부 등은 농산물 수입 확대와 디지털 규제 완화 등에 난색을 보이고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농산물 시장 개방은 레드라인(한계선)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또한 통상 당국은 환경부와 미국 자동차 친환경 규제 완화 요구를 두고 협상안 마련을 위해 고심 중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전체 정부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국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 정부 관계자는 “‘원팀’이 돼도 이길까 말까 한 협상”이라며 “정부 각 단위의 의견 조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동환 윤예솔 기자, 세종=양민철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