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 당국 고위 관계자가 미국과 관세협상을 시작하려면 고정밀지도(5000대 1 축척) 해외 반출을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이 사안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공개 관계부처 회의에서 발생한 일로 국토부는 통상 당국 요청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농축산물 수입 완화 문제에 이어 부처 간 혼선이 반복되면서 관세협상의 컨트롤타워가 부재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국민일보 취재 결과 통상 당국 고위 관계자는 최근 한·미 통상협의 후 열린 비공개 관계부처 회의에서 구글에 고정밀지도 데이터 해외 반출을 허용해야 우리 정부가 미국과의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 있고, 대화 시작의 여건이 마련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통상 당국은 고정밀지도 해외 반출 여부에 대한 입장도 최종 결정 시한인 다음 달 11일까지 정리해 달라며 국토부에 강하게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국토부는 구글과의 협의를 통해 결정 시한을 한 차례 더 연장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통상 당국은 이미 미국에 최종 결정 시한이 제시됐으므로 재연장은 관세협상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입장이다.
국토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구글이 올해 초 9년 만에 다시 요청한 고정밀지도 데이터에는 군사시설 등 민감 정보가 포함돼 있어 국토부는 안보상 이유로 반출을 불허해 왔다. 구글은 앞서 2007년과 2016년 두 차례 지도 반출을 요청했지만 모두 거절당했고, 애플의 지도 반출 요청도 2023년 같은 이유로 불허됐다. 국토부 관계자는 “안보, 기술문제가 결합돼 당장 긍정적인 답을 내놓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사안을 논의하는 한·미 간 1~3차 기술협의도 통상 당국 주도로 진행돼 왔다. 국토부는 1차 협의에만 참석했을 뿐 2·3차 협의에는 배석하지 못했다. 주무부처가 빠진 채 핵심 논의가 이뤄진 셈이다. 이를 두고 미국과의 관세협상 과정에서 안보에 대한 우려가 소홀하게 취급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국토부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국토부는 일단 최종 시한까지 국가정보원, 국방부 등 안보 기관과 협의한 뒤 산업통상자원부·외교부 등 9개 기관이 참여하는 ‘측량성과 국외반출 협의체’를 통해 결론을 내린다는 입장이다.
정부 내에서 부처 간 조율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고정밀지도 해외 반출, 30개월 이상 소고기 수입 등 민감한 현안은 총리실 또는 대통령실 등에서 범정부 차원의 판단이 이뤄져야 하는데, 혼선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정부 관계자는 “대통령실이든 어디든 결단을 내려줘야 하는데 조정 없이 혼선만 계속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세종=김혜지 기자 heyj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