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스타인 파일 왜 공개 안 하나”… 트럼프에 반기 든 ‘마가’

입력 2025-07-17 00:01 수정 2025-07-17 00:0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백악관 사우스론에서 전용 헬기 마린원에 탑승하기 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오른쪽은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 AFP연합뉴스

“엡스타인 고객 명단을 공개하라!”

미국 공화당 내 강성 친트럼프 인사인 마저리 테일러 그린 하원의원은 지난 11일(현지시간) 엑스에 이런 글을 올렸다. 이른바 ‘엡스타인 사건’ 추가 정보를 공개하지 않겠다는 미 법무부 결정을 비판한 것이다. 그린은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서도 “(비공개 결정을) 누구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날을 세웠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핵심 지지층인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이 최근 엡스타인 사건 처리를 놓고 트럼프 행정부에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진화 노력에도 반발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마가 진영은 트럼프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결정도 비판하는 등 주요 군사 정책에도 불만을 감추지 않고 있다. 15일 NYT는 트럼프 취임 후 6개월의 ‘허니문 기간’에는 공화당이 단결돼 있었지만 이제 정치 연합의 약화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엡스타인 사건은 미성년자 성 착취 혐의로 체포돼 2019년 교도소에서 숨진 채 발견된 미국 억만장자 제프리 엡스타인과 관련된 의혹이다. 유력 인사 성접대 리스트가 있다거나, 그의 사인이 타살이라는 음모론이 끊이지 않았다. 법무부와 연방수사국(FBI)은 지난 7일 고객 명단이 있었다는 증거가 없고 사망 원인도 자살이라고 발표했다. 트럼프는 12일 트루스소셜에서 “시간과 에너지를 엡스타인에 허비하지 말자”며 “마가는 한 팀”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마가의 불만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대표적 마가 인플루언서인 로라 루머는 “트루스소셜에 글 하나 올린다고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루머는 팸 본디 법무장관 해임과 특별검사 임명을 촉구하고 있다. 민주당은 사건 정보 공개를 강제하는 결의안 표결을 추진하는 등 공세를 펴고 있다. 15일 하원 표결은 부결됐지만 공화당 소속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도 표결 직후 “모든 정보를 공개하고 국민이 판단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엡스타인 사건 소송 문건은 뉴욕 맨해튼 연방법원이 지난해 1월 일부 공개한 바 있다. 943쪽 문건에 과거 엡스타인과 교류가 있었던 180여명의 이름이 담겼다. 이름이 담긴 것만으로 범죄에 연루됐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트럼프와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앤드루 영국 왕자 등 유명 인사들이 거명됐다.

마가 진영은 이른바 ‘딥스테이트’(정부 내 숨은 권력집단)가 엡스타인 사건을 은폐하고 있다는 음모론을 제기한다. 트럼프도 딥스테이트 청산과 엡스타인 문건 공개를 약속했는데, 집권 후 말을 바꾸는 듯한 모습에 반발이 확산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악시오스는 “마가는 자신들의 성과를 무너뜨리려는 음모 세력이 있다고 확신한다. 트럼프가 엡스타인 사건을 처리하는 방식이 이런 두려움을 더욱 굳혔다”고 전했다. ‘트럼프의 책사’로 불렸던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내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은 40석을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마가 진영은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결정도 비판하고 있다. 그린 의원은 엑스에 “마가는 미국이 해외 전쟁에 더 개입하지 않는 데 투표했다”고 썼다. 앞서 트럼프가 B-2 폭격기를 동원해 이란 핵시설을 폭격했을 때도 반발이 나왔었다. 마가 진영 핵심에서 비판이 나오는 상황이 향후 트럼프 정치 행보에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