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에 걸리면 미장원보다 치과를 더 자주 방문해야 한다.” 20만명 넘는 치매 환자를 진료한 일본의 신경과 의사 하세가와 요시야는 2022년 저서 ‘치매 없는 뇌 만들기’에서 치아·구강 관리의 중요성을 이런 말로 설파했다.
치아 건강과 치매 발생 및 진행의 연관성은 많은 의학적 연구를 통해 밝혀져 있다. 치아의 상실이 치매 위험을 높이고 치주병균이 알츠하이머 치매의 원인이 된다. 잇몸병이 있는 치매 환자는 인지기능 저하가 더 빠르고 구강 건강이 불량하면 흡인성 폐렴 등으로 사망할 확률이 높다. 하세가와는 신경과 전문의이면서도 진료실에 치과 유니트체어를 설치하고 치위생사를 고용해 자신을 찾는 치매 환자의 구강 관리에 유독 신경썼다. 지금은 아예 치과 클리닉을 개설해 연계 진료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은 약 40년 전부터 치매 환자의 치과 진료 및 구강 관리를 위한 정책과 시스템을 탄탄하게 갖춰 왔다. 전체 치과의 20% 이상이 치매 환자가 있는 요양시설이나 집으로 찾아가는 방문 치과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2015년 ‘신오렌지플랜’, 2019년 ‘인지증(치매의 대체 용어) 시책 추진 대강’을 통해 치과 의사와 약사를 치매 조기 발견 및 예방의 핵심 직군으로 지정하고 생애 전 주기 치매 예방 관리에 구강 건강을 통합시켰다. 또 한국의 장기요양보험 격인 ‘개호(간병)보험’은 대상자들의 자립 지원, 중증화 방지를 위해 구강 관리를 중요하게 고려한다. 의사와 재활 전문가, 영양사 등과 더불어 치과 의사, 치위생사의 참여를 필수로 한다.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를 경험한 일본의 대처는 눈여겨볼 만하다.
한국의 현실은 어떤가. 지난해 말 예상보다 일찍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고 치매 유병자 100만명(중앙치매센터 지난해 기준 치매 추정 환자 60세 이상 95만명, 65세 이상 91만명)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이들을 위한 구강 관리 시스템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전국 256개 치매안심센터에 구강 관리 전담 인력이 전혀 배치돼 있지 않다. 중앙치매센터의 직종별 치매 전문 교육에 치과 직군은 배제돼 있다. 치과의 가정 방문 진료나 구강 관리도 허용돼 있지 않다.
치매 환자의 일선 치과 진료는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중증 치매 환자는 치과를 가려 해도 2~3명의 가족이 동반해야 하는 등 이동에 제약이 따른다.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 치매 환자는 ‘장애인’으로 인정되지 않아 장애인 택시나 주차장 이용 혜택도 받을 수 없다. 장애인 치과 진료보다 훨씬 난이도 높고 위험한 치매 환자의 진료에 보상(수가 지원) 등 아무런 제도적 뒷받침이 없다. 그렇다 보니 전국 2만개 가까운 치과 중 치매 환자 진료가 가능한 곳은 50군데가 채 안 된다. 치매 환자를 위한 공공치과병원이나 시설도 없다. 전국 4500개 장기요양기관에 치과 촉탁의는 지난해 기준 단 9명뿐이다. 국내에선 치매 진단 이후 구강 건강이 사실상 방치되는 현실이다.
더 큰 문제는 정부의 치매 정책에 ‘구강’이라는 단어조차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보건복지부는 2008년 이후 4차례 치매종합관리계획을 세웠지만 어디에도 구강 건강은 언급되지 않았다. 문재인정부가 추진한 치매국가책임제에도 구강 관리 항목은 빠졌다. 정부는 올해 안에 5차 치매종합관리계획(2026~2030년)을 수립해야 한다. 내년 3월엔 노인·심한 장애인 대상 지역사회 통합돌봄 지원 사업이 시작된다. 주요 대상이 치매 환자일 것이다. 초고령사회가 본격화하면 치매 환자가 급증할 것은 명약관화하다. 정부는 이제라도 치매 환자를 위한 ‘구강 돌봄’ 인프라 구축에 적극 나서야 한다.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 치매 환자 구강 관리 체계를 바로잡을 골든타임”이라는 임지준 치매구강건강협회장의 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