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터슬라이드 또 탈래요! 여기선 긴 줄 안 서도 돼서 진짜 좋아요.”
무더위와 습한 날씨가 오가던 지난 12일 서울 노원구 호산나교회(이상희 목사) 앞마당은 아이들 웃음소리로 활기를 띠었다. 대형 풀과 유아 풀, 워터슬라이드가 설치된 수영장에서 형형색색 수영복을 입은 아이들이 물장구치며 놀고, 부모들은 피크닉 테이블에 앉아 간만의 여유를 즐기는 풍경은 도심 속 작은 워터파크 같았다.
매년 더 더워지는 여름, 앞마당을 수영장으로 개방해 지역 주민들에게 즐겁고 시원한 쉼터가 되어주는 교회들이 있다. 동네 교회 안에 마련된 물놀이터는 아이들에게 안전한 돌봄과 친구가 있는 신나는 시간을, 어른들에겐 잠시 여유를 누릴 쉼을 주는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아이들 웃음 채운 교회 마당
호산나교회는 2016년부터 매년 여름 지역 아이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워터슬라이드와 수영장을 설치해 개방해왔다. 한여름 주말이면 지역민 100여명이 찾는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이상희 목사는 “유료 워터파크에서는 많은 인파 속에서 부모들이 아이를 한시도 눈에서 떼기 어려운 경우가 많지만 교회에서 운영하는 수영장은 믿을 수 있는 봉사자들이 곳곳에서 세심하게 살피고 있어 부모들도 휴식을 가질 수 있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교회가 수영장을 운영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단연 안전이다. 이를 위해선 여러 손길이 필요하다. 수영장 안팎에서 아이들 안전을 지키는 역할은 안수집사와 남전도회 청년들이다. 수영장 운영 기간 봉사가 필요한 시간대를 나눠서 각자 가능한 날을 표시해 채운다. 올해 수영장은 오는 27일까지 3주에 걸쳐 토·일요일 운영된다.
안전 관리만큼 어려운 일이 또 있다. 바로 시설 관리다. 이승훈(49) 안수집사는 “그동안 교회에선 수영장 개방을 위해 매년 워터슬라이드를 임대했는데, 재작년 자체 구입을 결정했다”면서 “간이 수영장과 워터 슬라이드를 안전하고 깨끗하게 사용하기 위해 매주 사용 후 정리하고 새로 설치한다”고 말했다. 15명 넘는 봉사자들이 힘을 합쳐 설치에만 3시간, 물 채우는 데는 10시간 이상 걸리는 작업을 매주 한다는 얘기다.
“철거할 때도 바람 빼고 장비를 정리하는 일이 만만치 않지만 아이들이 깨끗한 물에서 마음껏 뛰노는 모습을 보면 그 수고가 모두 보람으로 돌아옵니다. 초등학생 시절 이곳에서 물놀이하던 아이들이 이제는 청년이 되어 봉사자로 나서는 모습을 볼 때마다 신앙 안에서 잘 자라준 것이 참 감사하고 깊은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여전도회와 권사회 소속 봉사자들은 물놀이에 빠질 수 없는 먹거리 준비에 정성을 다한다. 이날 에어컨도 없는 주방에서 땀 흘리며 준비한 간식은 떡꼬치 감자튀김 치킨너깃 등 아이들이 좋아하는 메뉴로 채워졌다. 초등학교 1학년 딸과 함께 호산나교회를 찾은 박현수(48)씨는 “간식까지 챙겨주며 따뜻하게 환대해 주는 교회에 감사하다”며 “워터파크는 주로 가족끼리 다니는데, 교회 수영장은 평소 친한 친구들과 함께할 수 있어 아이가 더욱 즐거워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탁옥희(68) 권사는 “폭염 속에서 봉사하는 일이 쉽진 않지만, 주민들이 교회에 와서 함께 웃고 쉬는 모습을 보면 오히려 제가 더 힘을 얻는다”며 “자연스럽게 복음을 나눌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게 특히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실제 교회 수영장이 복음의 접점이 되는 경우도 있다. 워터파크 행사를 계기로 처음 교회에 발을 들인 이들이 마음의 문을 열고 이후 새신자로 정착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목사는 “수영장을 통해 처음 교회에 발걸음 하는 분들이 있다. 교회 덕분에 ‘우리 동네가 참 따뜻하다’는 마음이 하나님께 마음을 여는 계기로 이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교회가 지역 명소로 거듭난 계기
인천 계양구에 있는 125년 전통의 계산중앙교회(최신성 목사)는 아예 지역민들의 여름철 명소로 자리 잡은 사례다. 교회 앞마당과 주차장 일부에 워터슬라이드가 있는 대형 풀장과 유아들을 위한 안전한 에어바운스 등이 마련돼 있다. 17년 전부터 시작된 교회 수영장은 매년 여름 약 3000명의 어린이가 이용할 만큼 ‘동네 워터파크’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 최 목사는 “교회학교 교사 한 명이 섬김의 마음으로 헌금한 400만원이 마중물이 돼 여름 수영장 사역이 시작됐다. 당시 마땅한 실내 수영장이 지역에 없다는 점에 착안해 어린이들을 위한 임시 수영장 개방을 생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계산중앙교회 수영장은 다음 달 16일까지 매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운영되며 주일은 오후 1시에 개방된다. 관리비 명목으로 5000원의 입장료를 받지만, 이 돈은 전액 지역 아동의 장학금으로 다시 쓰인다.
여름 사역 일환으로 수영장을 개방해 지역 주민과 소통의 장을 넓히려는 교회들은 서울 도심부터 전국 각 지역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서울 구로구 연세중앙교회(윤석전 목사)도 오는 21일부터 다음 달 16일까지 3주간 수영장을 열어 지역 주민들을 맞을 예정이다. 연세중앙교회 행사국장 김영민 장로는 “지난해 처음 시작했는데 주말에만 400여명이 다녀갈 정도로 지역 주민들의 반응이 뜨거워 올해도 행사를 이어가게 됐다”며 “무엇보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안전탑을 설치하고 매일 22명 정도의 봉사자들을 현장에 배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관악구 남성교회(강준모 목사)도 오는 24~26일 3일간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물놀이장을 운영하고 중구 만리현교회(김한규 목사)도 다음 달 9일 수영장을 개방한다.
대전 서구의 대전산성교회(지성업 목사)는 오는 25일부터 31일까지(월요일 휴무), 부산 해운대구 동부산교회(이형섭 목사)는 지난 8일부터 다음 달 30일까지 두 달에 걸쳐 수영장을 운영 중이다.
미자립교회 초청, 함께하는 ‘워터풀’
교회 인근 지역에 있는 워터파크를 적극 활용하면서 미자립교회를 초청해 여름 사역을 더욱 의미 있게 확장하는 사례들도 있다.
경기도 의정부의 높은뜻덕소교회는 지역 워터파크인 아일랜드 캐슬 리조트의 일부 공간을 임대해 예배를 드리고 있다.
오대식 목사는 지난 13일 페이스북을 통해 “교회학교 학생이 10명 이하인 작은 교회 10곳을 선정해 여름성경학교 기간 리조트 내 워터파크를 이용할 수 있도록 후원하기로 했다”고 적었다. 이어 “교회가 워터파크 내에 있어 주일에 수영복을 입고 오겠다는 아이들도 있다”면서 “20일을 ‘워터풀 선데이’로 정해 예배 후 교사와 청년들이 함께 워터파크를 방문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우리끼리 즐기는 시간’을 더 큰 범위로 확장한 것이다.
금당남부교회(고창주 목사)는 다음 달 2일 ‘금당워터파크’ 행사를 앞두고 하루 먼저 지역 내 미자립교회 10여곳의 다음세대 아이들을 초청한다. 자원과 인력이 부족해 여름 사역을 감당하기 어려운 작은교회 다음세대가 마음껏 뛰놀 시간을 마련키 위해서다. 고 목사는 “아이들이 물놀이를 통해 즐거운 추억을 쌓는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며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교회 물놀이터는 많은 이들이 반기는 공간이지만 이 사역을 이어가는 일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 앞마당 수영장을 운영했던 교회 중 주변 소음 민원 등으로 올해 운영을 중단한 경우도 있어 방문 전 운영 여부 확인도 필요하다. 전남의 한 교회 부목사는 “민원으로 올해 수영장을 열지 못해 아쉽다”며 “교회가 지역을 섬기는 공간으로 계속 쓰일 수 있도록 내년엔 주민들과 더 소통해 다시 개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특히 안전 관리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한석훈 기독소방선교회장은 “어린이는 예측 불가능한 행동을 할 수 있어 봉사자들은 한순간도 방심하지 말아야 한다”며 “피로를 느끼는 아이가 있다면 즉시 물 밖으로 나와 쉬게 해야 한다. 응급 상황에 대비해 심폐소생술 등 응급처치법을 익히고 비상용 구급 장비도 갖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