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의 4분의 3이 대학에 진학하는 2020년대 한국사회에서 학벌은 사회적 지위를 구성하는 주요한 요소다. 학벌체제의 어디에 위치하느냐는 개인과 집단이 얼마나 많은 자원과 기회를 누릴 수 있는지에 영향을 주고 궁극적으로 사회 불평등 양상을 규정짓는 주요 요인이 된다. 대학체제 수준에서의 변화 없이는 이러한 학벌체제는 하나의 사회적 사실로 영속할 것이다.
국내 및 세계대학 랭킹에 기반한 대학 랭킹 체제는 학벌체제에 대한 도전과 대안으로 등장했다. 하지만 줄세우기식 랭킹은 마태복음의 구절처럼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하게, 부자는 더욱 부자로 만드는 결과를 만든다. 학벌체제에서의 불균등한 기회와 자원 배분에 대한 고려 없이 결과만을 바탕으로 하는 대학 랭킹은 학벌체제의 불평등을 숫자로 정당화하면서 학벌체제와 공생관계로 자리 잡았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대학 학벌체제라는 한국 사회의 법칙을 바꿀 수 있는 획기적인 어젠다다. 지위체계 구조로서 학벌체제는 수직적이고 변화가 어려우며 획일적이다. 게다가 대학 랭킹과 결합되면서 대학 간 작은 차이도 확대해 보여준다. 최근 조직사회학에서는 높은 수직성과 경직성, 뚜렷한 구분을 갖는 지위체계는 그 안에서의 작은 차이가 큰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데 기여한다고 지적한다. 학벌체제 안에서 대학은 획일적인 제도적 압력에 종속된다. 이는 오직 서열의 꼭대기에 있는 소수집단이 대다수 자원과 기회를 독점하는 승자독점구조에 다름 아니다.
학벌체제의 구별 짓기는 한국 대학과 사회에 생산적인 결과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 한국 대학들은 이미 전 세계 대학들과 경쟁하고 있는 데 반해 여전히 자국 내 구별 짓기에만 몰두하며 승자에게 모든 것을 몰아주는 학벌체제는 한국 대학들의 가능성을 억누르고 지배하고 독점하는 체제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대다수 대학과 학생을 불필요하게 사회경제문화적으로 비참하게 만드는 현재의 판을 바꿀 수 있는 기회다.
‘서울대 10개 만들기’ 성공을 위해 정부와 국회는 2가지 핵심과제를 빠르게 해결해야 한다. 첫째는 개혁의 뼈대인 10개 대학을 총괄하는 이사회 구성을 위한 입법이다. 대학연합체의 지배구조에 대한 확립이 없다면 이는 일부 국립대에 대한 일회성 투자에 따른 병목현상의 일시적 해소에만 기여할 뿐 기존 학벌체제로의 회귀를 막을 수 없다.
두 번째는 구조개혁이 대학과 사회 나아가 세계의 경제적 사회적 기술적 번영에 어떻게 기여할지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지위체계와 불평등의 관점에서 보면 수직적 서열화보다는 대학 고유 미션과 비전 혹은 개별 프로그램에 따라 다양한 가치평가 기준이 공존할 수 있는 체제가 바람직하다. 이에 맞춰 연구중심 대학들은 연구를 그 외의 대학들은 교육 혹은 지역사회에의 기여라는 우선순위에 집중할 수 있는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전현식 사회학과 경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