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향숙 (14) 신체심리학자에서 몸엔춤예술가로 생애 마지막 변신

입력 2025-07-17 03:07
김향숙(오른쪽) 대표가 지난해 제주도 한 카페에서 스승 남정호 선생과 교제하고 있다. 김 대표 제공

올해 3월 예순다섯 나이에 나는 신체심리학자에서 몸엔춤예술가(Soma&Dance Artist)로 생애 마지막 변신을 했다. 내 안에 깊이 잠들어 있던 춤의 DNA가 깨어난 것이다. 배경에는 남정호 선생님이 계셨다.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춤을 췄다. 아무도 없는 빈 공간은 어디든 무대였다. 안방 옷장에 달린 긴 거울 앞에서, 보름달이 휘영청 밝던 날 앞마당에서, 텅 빈 교회당 마룻바닥 위에서…. 춤을 출 때면 나는 책 속의 주인공이 돼 상상의 세계를 누볐다. 재투성이에서 벗어난 신데렐라가 되기도 하고 자유롭게 헤엄치는 인어공주가 되기도 했다.

고등학생이 된 후엔 춤추는 즐거움을 잊어버린 채 외롭고 우울한 날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남 선생님이 부임하셨다. 그분의 무용 수업은 창의적이었다. 비 구름 나무를 나만의 몸짓으로 표현하라 하셨다. 나는 다시 춤추는 즐거움을 되찾았다.

졸업과 동시에 선생님과 인연은 끊겼고 다시 춤과 멀어졌다. 춤이 좋아서 빠져든 춤의 세계였지만 춤은 뒤로 밀려나고 신체심리학자로만 살아왔다. 2019년 우연히 TV에서 남 선생님을 다시 뵈었다. 이제는 거장이 된 모습이었다. 이 시대 최고의 현대무용가이자 안무가,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 등 거창한 직함을 가졌지만 오랜만에 만나 뵌 선생님은 여전히 소탈하셨다. 지난해에는 은퇴하신 후에도 춤꾼으로 무대에 선 선생님의 공연을 봤다.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춤의 힘이었다. “그래, 다시 춤추자.” 남을 살리다 소모됐던 내 몸이 살아났다.

질문이 이어졌다. “왜 춤은 무대 위 전문가의 전유물이어야 할까. 무대 아래 일반인의 공유물이 되면 안 될까.”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춤에 대한 오해와 편견은 여전했다. “나는 몸치, 춤치다.” “춤은 잘 춰야 한다.” “춤은 경건하지 못하고 퇴폐적이다.”

그중 가장 견고한 편견은 경건하지 못하다는 인식이다. 춤의 입장에서 보면 억울하기 짝이 없다. 몸을 창조한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다윗도 여호와 앞에서 온 힘을 다해 춤을 췄다.(삼하 6:14) 다윗의 춤은 나의 춤, 나를 위한 춤, 저절로 추어지는 춤이다. 춤추는 것은 지구상의 온갖 시끄러운 일들을 외면하는 일이 아니라 일상의 삶을 예술로 창조하는 일이다. 나는 이를 ‘예술 춤’이라 부르기로 했다.

대한민국은 아프다. 행복하지 않다. OECD 38개국 중 삶의 만족도는 33위로 최하위권, 자살률은 부동의 1위, 우울증 환자 수는 100만명을 넘는다. 언제까지 제도를 탓하며 기다릴 것인가. 춤추면 행복 호르몬 엔도르핀이 급증하고 스트레스 호르몬 코르티솔이 급감한다. 춤은 지금 당장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다. 나는 이 행복의 맛을 나누고 싶었다.

그렇게 ‘몸엔춤예술학교’가 탄생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춤춘다, 나도 그렇다’를 모토로 몸치(痴)를 춤치(致)로 만드는 춤신(神)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몸과 춤의 치유성이 만나자 신경실조증을 앓던 목사님이 회복되는 등 폭발적인 반응이 일어났다.

헨리 나우웬은 책 ‘춤추시는 하나님’에서 말했다. “결국 우리가 얻는 치유는 우리의 상한 영혼이 다시금 춤추게 하는 치유이다.”

정리=박용미 기자 m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