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 2R도 격한 논쟁 불가피… 재계 불만 쌓였다

입력 2025-07-17 00:01 수정 2025-07-17 00:01
게티이미지뱅크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첫 여야 합의 1호 법안인 상법 개정안이 지난 15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됐지만 후속 입법공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번 개정에서 제외된 ‘집중투표제 의무화’ ‘감사 분리선출 확대’를 여당이 재추진하고 있고 경영권 방어장치 논의가 빠진 데 대한 재계의 불만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에 개정된 상법은 ‘이사의 충실 의무확대’ ‘3%룰 강화’ 등의 내용을 포함했다. 우선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해 주주 전체의 이익 보호 책임을 명문화했다. 이사회가 기업뿐 아니라 주주들의 권익까지 아우르는 방향으로 기능해야한다는 취지에서다.

감사위원 선임·해임 시 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3%룰’도 한층 강화했다. 그동안 사외이사를 감사위원으로 선임하거나 해임할 때 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을 각각 따로 3%씩 인정해 왔지만 앞으로는 이를 합산해 총 3%까지만 인정하는 방식으로 바뀐다. 대주주가 감사를 ‘자기 사람’으로 앉히는 관행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기업 감시 기능을 실질적으로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일본식 표현인 ‘사외이사’라는 용어를 미국식 ‘독립이사’로 바꿔 명칭 자체에 이사기구의 독립성을 더욱 명확히 부여했다. 또 자산 2조원 이상 기업은 전자 주주총회(주총)를 의무적으로 열어야 하는 내용도 담았다. 주총의 편법 운영을 막고 일반 주주들의 주총 참여율을 높이려는 조치다.

앞서 상법 개정안은 지난 3월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했다가 대통령 권한대행이던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하며 폐기됐다. 이후 이재명 대통령 취임 후 민주당이 최우선 순위로 재입법에 추진하며 새 정부 들어 여야 첫 협치 법안으로 통과됐다.

그러나 재계가 이들 조항을 대주주의 경영권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인식하면서 논란은 지속되고 있다. 3%룰이 강화될 경우 외부 세력이 자신이 원하는 인사를 감사로 선임할 가능성이 커져 단기 차익을 노리는 외국계 자본이 기업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기밀 정보를 확보할 수 있다는 우려다.

재계는 ‘이사충실 의무 확대’와 관련해서도 소송 리스크 증가를 우려하고 있다. 모든 주주의 이해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의사결정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에서 이사의 판단이 사후적으로 배임 혐의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주주 간 수익 추구 성향이나 사업 선호가 엇갈리는 상황에서 어느 한쪽의 이익에 반하는 의사결정이 이사회의 책임 문제로 번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재계는 포이즌 필, 차등의결권 등 최소한의 경영권 방어 수단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포이즌 필은 적대적 인수합병(M&A) 등 경영권 침해 시도가 발생할 경우 기존 주주에게 신주를 낮은 가격에 배정해 지분율을 높일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차등의결권은 경영진이 보유한 주식에 일반 주식보다 많은 의결권을 부여해 소수 지분으로도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

이런 가운데 여권이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감사 분리선출 확대를 포함한 ‘상법 2차 개정’을 예고하면서 입법 공방은 더욱 격화될 전망이다. 두 방안 모두 대주주의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다는 이유로 여야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공청회를 거쳐 추가 논의하기로 하고 이번 개정안에서는 제외됐다.

집중투표제는 소액주주가 자신이 선호하는 이사 후보에게 의결권을 집중적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허용해 일반 주주 권익을 강화하는 제도다. 감사 분리선출 제도는 현행 상법에서도 일부 시행되고 있지만 이번에는 분리 선출 대상인 감사위원을 기존 1명에서 2명 이상으로 확대하는 내용을 포함했다.

여야의 입장 차이는 지난 11일 열린 상법 추가 개정안 공청회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났다. 민주당은 “기업 운영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집중투표제와 감사 분리선출이 필요하다”며 추가 개정에 속도를 내는 반면 국민의힘은 “해외에도 없는 시기상조의 규제”라며 “국내 기업이 외국인 헤지펀드의 공격에 무력해질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이미 범여권은 주주 권익 강화를 위한 입법을 잇따라 발의하며 상법 개정의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 김남근 민주당 의원은 지난 9일 상장사가 자사주를 취득할 경우 1년 안에 소각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은 기업이 자사주를 취득한 뒤 6개월 내 의무 소각하도록 하는 상법 개정안을 냈다. 김 의원 안이 제시한 소각 기한 1년을 절반으로 단축한 내용이다.

이소영 민주당 의원도 지분 0.1% 이상 주주도 주주제안을 할 수 있도록 한 ‘권고적 주주제안권 도입’ 법안을 지난 14일 대표 발의했다. 현재는 지분율 3% 이상 주주 또는 지분율 1% 이상의 주식을 6개월 이상 보유하고 있는 주주에 한해 기업 경영에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

개정된 상법이 제대로 안착하려면 후속 입법 과정에서 균형 잡힌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당은 일단 배임죄에 대한 법적 책임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조율에 나섰다. 김태년 민주당 의원은 최근 상법상 특별배임죄를 폐지하고 형법에 ‘경영상 판단’을 위법성 조각 사유로 명문화하는 상법·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묻지마 소송’에 대한 재계의 우려를 반영한 조치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추가 상법 개정은 일단 멈추고 기업들이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부터 마련해 논의의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김혜지 기자 heyj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