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추가 논의 중인 상법 개정안 쟁점 가운데는 해외에서도 법제화 여부가 엇갈리는 항목이 다수 포함돼 있다. 여야 이견으로 지난 3일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집중투표제 의무화’가 대표적이다. 집중투표제는 이사를 선임할 때 개별 주주가 이사 후보의 수만큼 의결권을 받아 이를 특정 후보에게 몰아줄 수 있는 제도다. 대주주가 사실상 모든 이사를 선임할 수 있는 현행 제도보다 소수 주주에게 유리하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가 지난달 국회에 제출한 ‘상법 개정 의견서’에 따르면 주요 7개국(G7) 국가 중 4개국이 집중투표제를 채택하지 않고 있다. 나머지 3개국(미국 일본 캐나다)도 개별 기업에 도입 여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미국은 1940년대 최초 시행 당시 애리조나 등 22개 주에서 강제 규정으로 집중투표제를 도입했지만 현재는 5개 주를 제외한 나머지 주는 자율 규제로 전환했다. 1950년대부터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한 일본도 1974년 임의규정으로 돌아섰다. 현재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한 국가는 중국, 러시아, 멕시코, 칠레 등에 그친다.
그러나 한국과 기업 지배구조 형태가 유사한 대만은 집중투표제 의무화 이후 폐지, 재도입 과정을 거쳤다. 대다수 상장기업이 가족 기업인 대만은 1966년 집중투표제를 법제화했지만 기업 자율성 증진을 명분으로 2001년 임의규정으로 완화했다. 그러나 2007년 전자부품 1위 기업인 야교(YAGEO)가 집중투표제를 채택하지 않았던 2위 기업 타이(Tai-I)를 상대로 적대적 M&A를 시도하는 ‘야교 사태’가 터지며 소수주주 보호 필요성이 높아졌고, 2011년 집중투표제를 부활시켰다.
상법 개정이 본격적인 논의 궤도에 오른 것을 계기로 ‘한국식 지배구조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식 ‘재벌’로 대표되는 오너경영 체제가 가진 장점과 지배·일반주주 간 이해충돌 문제를 보완할 제3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조용두 삼일회계법인 고문(성균관대 경영학과 초빙교수)은 최근 삼일PwC 거버넌스센터 기고문에서 스웨덴 발렌베리, 덴마크 노보 노디스크 그룹 등의 ‘기업 재단’ 지배구조 모델을 사례로 들었다. 조 고문은 “이들 기업은 가족경영으로 시작해 100년 이상 역사를 가지며 지배구조 최상단에 있는 기업 재단이 창업정신과 기업 목적에 부합하는 경영을 하도록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3세 경영으로 접어드는 한국 대기업도 상속을 위한 대비가 일반주주와의 이해 상충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며 “한국경제 체질 변화의 핵심은 기업 지배구조의 패러다임 변화”라고 했다.
세종=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