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넉 달여 만에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마주할 과제는 녹록지 않다. 우리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미·중·일을 상대로는 통상 협상을 포함해 실리외교를 성사시켜야 한다. 한편에선 최근 밀착한 북·러 이슈를 중심으로 한반도 안보 상황도 점검해야 한다. 정부는 북한과 미·중·일·러 등 정상을 초청해 릴레이 정상외교를 펼치겠다는 구상이지만 엄혹한 외교환경 속 방한을 성사시키는 것부터 관건인 상황이다.
정부 관계자는 15일 주요국 정상 참석과 관련해 “각국 정상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성공적으로 회의가 개최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과의 관세 협상이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참석 여부부터 장담하기 어렵다. 여권에서는 통상 협상이 정체된 상황에서 다자회의 현장에서 만난다 해도 이 대통령의 외교적 공간이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참석은 비교적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 중국이 내년 APEC 정상회의 의장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 방한을 피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중 간 무역 갈등이 격화하는 가운데 한국이 이들 패권국의 신경전 속에서 실익을 얻을 수 있겠느냐는 부정적 전망도 작지 않다.
이 대통령 취임 이후 한·일 간에는 그동안 훈풍이 불었지만, 최근 역사 문제를 계기로 긴장이 다시 커지고 있다. 지난 7일 일본의 ‘군함도’ 문제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재논의하려던 정부 외교전은 일본의 교섭 불응으로 실패했다. 일본 정부가 이날 발표한 방위백서에서 독도를 자국의 고유 영토라고 주장하면서 우리 국민의 수용성도 더 떨어지는 상황이다. 이 탓에 종국엔 한·일 정상 간 과거사 문제에 대한 논의가 우선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의 최고지도자를 남측의 국제행사에서 데뷔시켜 남북 관계를 획기적으로 풀어보겠다는 것은 민주당 계열 정부의 숙원이다. 그러나 윤석열정부를 거치며 북한 내 남측 담당 부서가 사라지면서 공식 초청 경로조차 폐기된 지금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초청하기부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다만 중국 베이징과 미국 뉴욕 유엔대표부 등을 거치는 ‘외교부 라인’은 아직 살아있어 외교 서한 등을 통한 연락은 가능하다는 것이 외교부 설명이다. 이 대통령의 잇따른 대북 유화책 이후 북한과의 관계 개선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국제형사재판소(ICC) 체포 대상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불참이 유력하다. 푸틴 대통령은 2022년부터 APEC에 참석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APEC 정상회의 준비위원장인 김민석 국무총리를 필두로 남은 기간 개최 준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김 총리는 이날부터 1박2일간 경북 경주를 다시 찾아 APEC 정상회의 현장점검에 나섰다. 지난 11일 첫 점검 후 4일 만이다.
최승욱 이동환 최예슬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