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양산이 기후위기 시대 ‘여름 생존템’으로 자리 잡고 있다. 폭염과 폭우를 오가는 변덕스러운 날씨에 남성 소비자의 양산 검색량이 전년 대비 10배가량 뛰었다. 국내외 지방자치단체들은 ‘남성 양산 쓰기’ ‘하굣길·출근길 양산 쓰기’ 캠페인을 펼치며 전 세대의 양산 사용 적극 권장에 나섰다.
15일 온라인 패션 플랫폼 무신사에 따르면 때 이른 폭염이 시동을 건 지난 1일부터 14일까지 남성의 ‘양산’ 검색 건수가 전년 동기 대비 985% 폭증했다. 지난 1월부터 이달 14일까지 누적 검색량은 135% 증가했다. 봄부터 이어진 양산에 대한 관심이 여름 성수기에 진입하면서 치솟은 것으로 풀이된다.
버스로 출퇴근하는 유모(32)씨는 “‘남자가 무슨 양산이냐’고 생각했는데, 피부 보호와 탈모 예방에도 좋다는 말에 장만했다. 비 오면 우산으로도 바로 쓸 수 있어 애용 중”이라며 “직접 써보니 무더운 날 훨씬 덜 더워서 놀랐다”고 말했다.
양산이 여성용으로 굳어진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우산(umbrella)의 영단어가 라틴어 ‘umbra’(그늘)에서 유래했듯, 우산의 목적은 햇볕 가리기였다. 과거 이 ‘햇빛 가리개’는 상류층의 상징이자 왕과 귀족의 필수품이었으니 양산의 주 사용자는 남성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근대 이후 양산과 우산의 역할이 분화되면서 양산은 자연스레 여성용으로 자리 잡았다.
기후위기로 폭염이 심화하며 이 인식은 급속히 깨지고 있다. 일본에서는 2018년부터 지자체 차원에서 ‘남성 양산 쓰기 운동’을 진행 중이다. 한국의 환경부 격인 환경성은 2019년 ‘아버지의 날에 양산을 선물해 열사병을 예방하자’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그 결과 2023년 닛케이 산하 월간지 닛케이트렌디 히트상품에는 ‘남자 양산’이 14위에 올랐다.
국내 역시 최근 ‘남녀 모두 양산 쓰기’ 운동이 확산하고 있다. 기상청은 지난 8일 전국 시·도 교육청에 ‘하굣길 양산 쓰기 캠페인’ 카드 뉴스를 배포해 학생들의 활용을 독려했다. ‘대프리카’(대구+아프리카)로 불리는 대구시는 2020년부터 운영해 온 양산 대여소를 올해 160여곳으로 확대하고 남성용 양산까지 비치했다. 국립국어원은 2021년 ‘양산’ 정의에서 “주로 여성들이 쓰는”이란 문구를 삭제하기도 했다.
양산 디자인에도 변화가 생겼다. 과거에는 레이스 장식의 파스텔톤 양산이 주류였다면 최근에는 단색 자외선 코팅 우양산이 대세로 떠올랐다. GS25에 따르면 이달 1~14일 검은 우산 판매량은 전월 동기 대비 336.2% 증가했다. 오늘의집 등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에서는 ‘깔끔한’ ‘남성용’ 수식어를 단 제품이나 전용 파우치를 갖춘 휴대용 제품까지 실용성을 극대화한 라인업이 인기다.
양산 수요 급증에 유통가도 반응했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은 오는 24일까지 업계 최초로 스페인 우양산 브랜드 ‘애즈펠레타’ 팝업스토어를 통해 초경량 모델 20여종을 선보인다. 다이소는 ‘UV 차단용품 기획전’을 통해 우양산과 선글라스 등을 일상적 스타일링까지 고려해 선보이고 있다.
이다연 기자 id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