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을 품은 노숙인들, 무대 올라 희망을 노래하다

입력 2025-07-16 03:01 수정 2025-07-16 13:40
시각장애인 김선희(무대 위 가운데)씨가 15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연합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한국 노숙자(자유인) 찬양 페스티벌’에서 열창하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15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연합회관 대강당, 눈을 감은 한 여성이 진행자의 도움을 받으며 조심스레 무대 위에 올라섰다. 전자피아노 반주가 흐르기 시작하자 마이크를 손에 쥔 그의 분위기는 180도 달라졌다. 찬양곡 ‘사명’을 열창한 그의 목소리는 깜짝 놀랄 만한 음색과 성량을 자랑했다.

그는 시각장애인 노숙인인 김선희(56)씨다. 스물세 살 때 시신경 장애로 시력을 잃은 김씨는 아버지 권유로 신학대에 진학했지만 마지막 한 학기를 남기고 포기했다. 이후 시작한 사업도 실패해 재산을 탕진한 뒤 “같이 죽자”는 부모를 떠나 3년 전부터 노숙 생활을 하고 있다. 노래를 마치고 내려온 그는 “하나님이 내게 다시 사명을 맡기신다면 두려움 없이 따르고 싶다는 소망에 용기를 내 무대에 섰다. 내년에도 또 한 번 무대에 서고 싶다”며 웃었다.

김씨가 이날 오른 무대는 한국노숙자총연합회(대표회장 이주태 장로)가 개최한 ‘한국 노숙자(자유인) 찬양 페스티벌’이다. ‘쪽방촌에 거주하거나 마땅한 거처 없이 거리를 헤매는 사람’을 대상으로 올해 처음 개최된 이번 행사엔 모두 160여명이 참가했다. 지난달 3일부터 24일까지 4차에 걸친 예선을 뚫고 본선 무대에 오른 건 15명. 서울 명동과 영등포, 경기도 수원 등 수도권 각지에서 참가한 이들은 제각각의 깊은 아픔 가운데서도 찬양하는 기쁨을 선보였다.

찬양 ‘친구의 고백’을 부른 이수정씨는 산드러진 노랫가락으로 청중을 사로잡았다. 자신을 60대라고만 밝힌 이씨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가창력으로 한때 교회 성가대 봉사도 했다”며 “하지만 내 멋대로 방탕한 삶을 살다 결국 노래로 주님을 찬양하며 살겠다는 서원 기도를 못 지켰다”고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이내 “3년 전 눈물의 기도 끝에 질그릇보다도 못한 저를 연단하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만났다”면서 “노숙하며 골병이 들어 치아가 다 상했지만 하나님 주신 힘으로 찬양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어 “찬양을 듣는 이들 모두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깨닫게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참가자들의 노래는 시각장애인 반주자 김광민 목사의 전자피아노 반주에 맞춰 이뤄졌다. 참가자들은 음원이 아닌 피아노 반주가 익숙하지 않은 듯 처음엔 어색해했지만 이내 바로잡고 가사를 음미하며 성심껏 노래했다. 관객들도 함께 가사를 읊조리며 찬양하고 박수로 격려했다.

행사를 주최한 이주태 장로는 “우리는 이들을 노숙인 대신 자유인이라 부른다”며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대신 용기를 주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이어 “자유인들이 가장 쉽게 접할 찬양을 통해 복음을 심고자 찬양제를 열었다”고 설명했다.

이날 최우수 수상자는 발표되지 않았다. 참가자들이 진지하게 참여한 만큼 시상도 보다 심혈을 기울여 별도의 축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이 장로는 “조만간 시상식을 하고 수상자들과 함께 나들이도 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임보혁 박효진 기자 bosse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