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를 사흘 앞두고 남극으로 가 삶을 끝내려던 한 병사가 있었다. 그의 마음을 돌린 것은 부대에서 본 한 무대였다. 땀 흘리며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하던 세 명의 여성. 그들을 보며 병사는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행복해 보일까’라는 낯선 질문을 떠올렸고 그 무대는 그의 목적지를 남극이 아닌 교회로 바꿔 놓았다.
무대 위 주인공은 결성 23년차 CCM 밴드 프라이드밴드다. 지난 13일 경기도 김포 다음세대교회(류인영 목사)에서 만난 멤버 소현(리더·베이스) 여은(기타) 유빈(드럼)씨에게 교회라는 울타리를 넘어 군부대나 학교로 향하는 이유를 묻자 이 병사의 이야기부터 꺼냈다. 이들에게 교회 밖 세상은 그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한 통로였다.
국내 최초 여고생 CCM 밴드로 KBS ‘탑밴드’ tvN ‘좋은가요’ 등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고 육군훈련소에서 부른 찬양 ‘실로암’ 영상은 조회수 131만회를 기록했다. 방송 출연은 비기독교인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한 전략이었다. 여은씨는 “‘CCM 가수’보다 ‘TV 나온 밴드’라고 하면 우리에게 더 귀 기울여줄 거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행보는 오해를 낳기도 했다. 교계에서는 “세상 기준에 맞춘다”는 비판을 받았고 세상에서는 더 많은 노출과 선정적인 동작을 요구하기도 했다. 중심을 지키기 쉽지 않았지만 ‘결국 찬양을 전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확신이 멤버들을 지탱했다.
이들이 흔들리지 않았던 또 다른 힘은 함께 보낸 시간에서 나왔다. 23년 전 맞벌이 부모님 때문에 방과 후면 교회에 모였던 소녀들에게 류인영 목사는 보호자이자 스승이었다. 그는 아이들에게 악기를 가르쳐 밴드를 만들게 했고 성적을 염려하는 부모들을 위해 직접 공부까지 도왔다. 교회에서 함께 음악하고 숙제하던 시간이 쌓여 단단한 뿌리가 됐다.
사역을 이어갈 수 있는 동력은 각자의 신앙적 경험이다. 소현씨는 교통사고로 어머니를 떠나보낸 아픔을 털어놨다. 처음에는 하나님을 원망했지만 기도 중에 천국에 대한 소망을 얻었다. 그는 “엄마가 고통 없는 곳에서 행복할 거란 믿음과 다시 만날 소망이 슬픔을 기쁨으로 바꿨다”며 “이 경험을 무대에서 나눌 때 비슷한 아픔을 가진 이들이 위로를 얻는다”고 말했다. 여은씨와 유빈씨 역시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사역의 이유라고 덧붙였다.
30대가 되며 이들의 음악과 메시지도 깊어졌다. 유빈씨는 “우리도 똑같이 넘어지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이라며 “그런 연약함을 고백했을 때 더 많은 청년이 공감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들은 이들에게 힘이 되어준 찬양으로 한웅재 목사의 ‘소원’을 꼽았다. ‘내가 노래하듯이 또 내가 얘기하듯이 살길, 주님 뜻대로 나 살기 원하네.’ 소현씨는 이 가사를 언급하며 “화려한 무대나 인정이 아니라 우리의 고백과 삶이 일치하는 것이 프라이드밴드의 목표이자 23년간 노래해 온 이유”라고 말했다.
김포=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