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급 지방 공무원인 A씨는 ‘간부 모시는 날’을 위해 매달 10만원씩 내고 있다. 간부 모시는 날은 아래 직급 공무원들이 사비로 상급자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걸 말한다. A씨는 “월급 500만원 받는 분들이 200만원 받는 청년들 돈으로 점심 먹는 게 이상하다. 차라리 본인 몫의 식사비만이라도 지불했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다른 하위직 공무원 B씨도 비슷한 부조리를 겪었다. 그는 “부서장의 호불호, 제철음식 등을 파악해 메뉴를 골라야 한다”며 “(간부 모시는 날에는) 식당 승인, 예약, 세팅까지 하느라 업무에 집중할 수 없다”고 전했다. 간부 모시는 날엔 개인 차량으로 대기하다 상관을 모셔가는 운전당번도 있다고 한다.
공무원 10명 중 1명은 공직사회 대표적 악습인 ‘간부 모시는 날’을 최근까지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행정안전부와 인사혁신처는 지난 4월 중앙·지방자치단체 공무원 11만3404명을 대상으로 간부 모시는 날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최근 1개월 내 간부 모시는 날을 경험한 응답자가 11.1%로 집계됐다고 15일 밝혔다.
간부 모시는 날 경험자 비율은 지자체 소속(12.2%)이 중앙부처 소속(7.7%)보다 높았다. 빈도는 주 1~2회가 45.7%, 월 1~2회 40.6%, 분기별 1~2회 10.5%, 연 1~2회 3.2%였다. 식사를 대접받는 간부의 직급은 부서장(과장급)이 75.9%로 가장 많았다. 국장급은 39.6%, 팀장급은 9.0%, 실장급 이상은 4.4%였다.
악습이 지속되고 있는 원인으로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조직 분위기와 관행(35.8%)’을 지적한 응답자가 가장 많았다. 간부가 인사 및 성과평가 등의 주체기 때문(22.5%), 간부의 식사를 챙겨야한다는 인식 팽배(18.3%), 대화와 소통의 기회로 삼으려는 목적(10.0%) 등의 답변도 있었다.
다만 지난해 11월 첫 실태조사 때보단 한결 상황이 나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지자체의 경우 지난해 11월 23.9%에서 올 4월 12.2%로 11.7% 포인트 감소했다. 중앙은 같은 기간 10.1%에서 7.7%로 2.4% 포인트 줄었다. 전체 응답자 중 32.8%는 지난 조사 후 간부 모시는 날이 줄어들고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