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맡에서 울리는 진동에 잠에서 깼다. 입금이 됐다는 소식을 전하는 은행 앱 알림이었다. 아침 댓바람부터 아버지가 용돈을 보내온 것이다. 이게 웬떡인가 곰곰이 궁리해 보니, 오호라! 오늘은 1년에 한 번 있는 내 생일이렷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용돈이 웬 말인가 싶겠지만, 이게 다 아버지가 건강하게 살아계신 덕 아니겠는가.
나는 아버지의 만수무강을 축원하며 기쁜 마음으로 용돈을 받았다. 늘 잠잠하던 휴대전화가 온종일 바쁘게 울렸다. 내 생일을 기억하는 지인들이 기프티콘을 보내며 축하를 전해왔기 때문이다. “아유, 뭐 이런 걸 다 보냈어!” 하면서도 사양하지 않았다. 모름지기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니까 말이다.
물론 뿌렸지만 거두지 못한 것도 있다. 그것은 바로 축의금이다. 아무래도 이번 생에 결혼은 어려울 듯싶으니 축의금 회수는 언감생심이다. 돌려받지도 못할 축의금을 무어 그리 많이 뿌렸는지 내심 아깝기도 하지만, 가래로 막을 것을 호미로 막았다고 생각하면 가슴을 절로 쓸어내리게 된다.
아마 내가 결혼을 했더라면 남편을 먹여 살리느라 어마어마하게 많은 돈을 소비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결혼을 염두에 두고 있던 전 남자친구에게 밥을 사 먹이고, 여행도 데려가고, 용돈도 줬던 전적이 있다. 얼마나 줬냐고? 많이 줬다. 그러니까 그게 얼마냐고? 정확한 액수를 말하기는 거시기하니 ‘아낌없이 퍼주는 나무’였다고 표현하련다.
그가 나에게 아무것도 베풀지 않은 건 아니다. 같이 러닝을 하자며 ‘세일하는’ 운동화를 ‘남에게 받은 상품권’으로 사준다든지, 추위를 많이 타는 나를 안쓰러워하며 ‘테무’에서 귀마개를 사준 적도 있다. 내가 해준 것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도 못 미치는 선물이었지만 나는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그는 말로 천 냥 빚을 갚는 스타일이었다. 나는 그 사람이 하는 달콤한 말이 좋아서 그와 평생을 함께하고 싶었다. 개그우먼 김숙의 말처럼, 돈은 내가 벌고 그는 조신하게 집안일을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자들은 알아야 한다. 벌이가 변변치 않은 남자가 집안일을 한다고 해서 그의 생활이 조신할 거라는 건 환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때의 손해를 만회하려 들어오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어휘와 관련된 원고를 쓰던 어떤 날에는 ‘에밀리 디킨슨’의 글을 읽었다. 그녀는 사모하는 사람에게 이러한 편지를 썼다. 감사하다는 말이 멀리에서만 맴도는 것 같으니, 자신의 눈에서 흘러나온 은으로 된 눈물을 대신 받아 달라고 말이다. 도대체 ‘감사’가 무엇이기에 ‘은’으로 된 눈물을 받아 달라고 말하는 것일까.
국어사전을 검색해 봤다. 내 눈을 사로잡은 건 ‘고맙게 여기는 마음’이라는 사전적 정의가 아닌, 감사를 이루고 있는 한자였다. 느낄 감, 사례할 사. 이 말인즉, 사례하고 싶은 느낌이 든다는 이야기였다. ‘감사하다는 말은 돈으로 해라’ 하는 말은 농담이 아니었던 것이다.
돈을 버는 일은 고되다. 그 고된 일의 결정체인 돈을 상대방에게 건네는 것은 피와 땀을 바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리는 감사한 사람에게 자신이 번 돈으로 산 선물을 준다. 그것은 한 끼의 식사일 수도 있고, 빛나는 보석일 수도 있으며, 멋진 자동차일 수도 있다.
그런데 감사의 뜻도 모르던 바보 같은 나는, 아무런 수고 없이 입만 열면 줄줄 흘러나오는 말을 선물이라 여겼던 것이다. 감사는 실체 없는 달콤한 말이 아니라 실재하는 것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그때는 왜 몰랐을까. 아낌없이 퍼준 나에게 그가 감사함을 느끼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서글프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다행이다 싶다. 고맙다, 먹고 떨어져 줘서.
며칠 후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일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내 생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단다. 혼자 사는 내가 과일을 챙겨 먹지 못할 것 같아서 이것저것 보냈다는 친구의 말에 나는 대답했다. “아유, 뭐 그런 걸 다 보냈어!”
다음 날 아침, 현관문 앞에 친구의 사랑 두 박스가 도착했다. 박스 속에는 귤, 수박, 체리와 블루베리가 그득하게 담겨 있었다. 접시 위에 과일을 골고루 담았다. 냉동실에서 잠자던 호밀빵도 꺼내 굽고 두유도 컵에 따라 아침을 차렸다. 덕분에 호텔 뷔페에 온 것처럼 호강했다고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친구는 과일 맛이 어떤지 물었다. “달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