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무엇일까? 한 연구소가 최근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10대 청소년이 행복을 위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요소는 ‘재산’이었다. 다음으로 부모, 친구, 휴식, 꿈 순이었다. 10년 전만 해도 청소년의 행복 조건 1순위는 가족과 친구 관계였는데 어느덧 돈을 행복의 결정적인 요소로 생각하는 경향이 압도적 1위로 자리 잡은 것이다.
왜 아이들은 돈을 행복의 첫째 조건이라 생각하게 됐을까? 우리 사회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대규모 구조조정과 실업을 겪으며 많은 가정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고통을 겪었다. 직장을 잃은 부모 세대는 자녀에게 돈이 있어야 살아남는다는 절박한 교훈을 물려줬다. 부모 세대의 불안은 자녀에게 안정적인 길을 요구했고, 돈을 버는 삶이 성공이라는 생각을 심어줬다. 오늘날 미디어는 더욱 강력한 영향을 끼친다. 청소년은 습관적으로 스마트폰과 SNS를 들여다보면서 명품과 비싼 음식, 해외여행으로 가득한 타인의 삶을 보면서 비교한다. 인플루언서들이 자신이 번 돈을 소비하는 장면은 많이 벌고 많이 쓰는 삶이 이상적인 삶이라는 환상을 심어준다. 유튜브에는 중학생 월 1000만원 수익, 돈 버는 방법 등의 영상이 인기 검색어다.
교육도 여전히 대학 서열 중심의 구조에 갇혀 있고, 성적과 등급이 학교 생활의 질을 좌우하는 시스템은 청소년에게 돈 잘 버는 직업을 목표로 삼게 한다. 2023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청소년의 67%가 좋은 직장을 가지려면 성적이 제일 중요하다고 응답했다. 이런 현실에서 청소년은 사람 사이의 관계보다 점수와 등급을 더 중시하게 되고, 성적이 계층 이동과 연결된다는 믿음을 갖는다.
그러나 심리학과 사회학의 여러 연구는 이와 다른 방향을 말한다. 하버드대에서 80년 넘게 진행한 ‘하버드 그랜트 연구’는 행복과 건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돈이나 명성이 아니라 ‘관계의 질’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안정적인 유대가 장기적으로 삶의 만족도와 면역력까지 결정짓는다는 것이다. 더불어 많은 연구가 자신의 적성과 열정을 따라 선택한 삶이 장기적으로 더 깊은 행복감을 준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공자는 견리사의(見利思義), 이익을 보면 의로움을 생각하라고 말한다. 맹자는 부귀로 마음이 흔들리지 않아야 대장부라고 한다. ‘명심보감’에서는 재물은 뜻을 어지럽히고 탐욕은 몸을 망친다고 경계한다. 동양 고전은 공통으로 재물이 삶의 목적이 돼서는 안 되며 참된 삶은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보다 어떤 마음과 자세로 살아가느냐에 있다고 말한다. 돈은 분명히 필요하고 중요하다. 그러나 돈은 도구이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자신의 재능을 통해 세상에 기여하고, 타인과 의미 있는 관계를 맺으며, 삶에서 지속적인 의미를 발견하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청소년에게 ‘무엇을 가졌는가’보다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청소년이 돈을 최고 가치로 여기는 현상은 우리 사회가 보여준 풍경이자 길러낸 가치의 반영이다. 어른은 청소년에게 성공과 행복은 단순히 많은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찾고 타인과 함께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과정임을 들려줘야 한다. 가정과 학교, 사회는 아이들에게 “네가 무엇을 소유했는지보다 네가 어떤 사람으로 자랐는지가 중요하며, 네가 얼마를 벌었는지보다 네가 세상에 무슨 선함을 남겼는지가 의미 있다”고 말해줘야 한다.
돈보다 꿈과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사회를 함께 만들어가면 좋겠다.
박수밀 고전학자·한양대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