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88 서울올림픽과 2002 한일월드컵

입력 2025-07-16 00:34

메신저로 대화하는 시대
꼰대 되지 말자는 내 다짐
MZ세대와 대화 가능할지

우리에게 2002 한일월드컵이 특별한 건 집단 기억 때문이다. 한국인이면 누구나 그 시점의 ‘나’를 떠올린다. 가령, 그때 난 열여섯 살이었다. 친구들과 밤거리를 헤매며 “대~한~민~국!!”을 외쳤다. 그렇듯, IMF 키즈(외환위기 당시 10대였던 1980년대생)는 지금도 안정환의 이탈리아전 골든골을 안줏거리 삼아 떠든다.

목수 시절, 형님들이 나를 끝까지 어린애 취급했던 건 88 서울올림픽 때문이었다. 건설 현장에서 망치질하는 대부분이 베이비붐 세대(한국에선 1955~1963년 출생자)보다 조금 늦게 태어난 이들이다. 군대 다녀와 건설 붐이 한창이던 80년대 중후반 망치질을 시작한 세대 말이다. 그런 형님들에게 88 올림픽은 청춘과 낭만 그 자체였다. 인생에서 가장 젊고 뜨거웠던 시절에 열린 대한민국 초유의 국제 대회! 그러니, 88 올림픽도 못 본 ‘햇병아리와 도무지 겸상’할 수 없었던 거다. “보긴 봤다고요. 너무 어려서 기억 못할 뿐이지”라는 말에, A형님은 “김수녕의 활 시위를 기억하지 못하는 너 따위가 88 올림픽을 봤다고 할 수 없다!”고 잘랐다.

두 달 전, IT 스타트업으로 이직했다. 자세한 얘긴 지난 글 참고. 마케팅본부장이다. 우리 부서는 나를 제외한 8명 전원이 MZ 여성이다. 심지어 막내는 2003년에 탄생하셨다. 막내 입사하던 날, 이력서 보고 놀랐다. 아니, 잠깐만. 2002 월드컵을 역사책으로 봤다고요? 형님들이 나를 볼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공사판에서 망치질하던 사람이 엑셀 들여다보며 데이터 분석하고 마케팅 전략 수립하면서 겪는 어려움이야 각오했던 바다. 그렇다 치자. 진짜 어려움은 88 올림픽과 2002 월드컵, 그 사이 어디다.

불과 두 달 전까지 술 좋아하고, 낚시 좋아하고, 낚시터에서 마시는 술을 최고로 여기는 ‘마초’들과 일했다. 나이로 보자면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 거친 쌍욕 난무하는 공사판에서 형님들과 난 서로의 호흡을 가늠했다. 무거운 자재를 함께 들었다.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들을 서로에게 비볐다. 그렇게 건물을 쌓아 올렸다. 뜨거운 여름날이면 땀 냄새 풀풀 풍기며 삼겹살집으로 향했다. 우리가 느낀 건 동료애가 아니라 전우애였다.

그러다 MZ 여성 8명을 이끄는 리더가 됐다. 그것도 나이 차이 크게 나는, 그래서 자칫하면 ‘꼰대’로 비칠 수 있는 ‘본부장님’이다. 여기서부터 이미 카오스다. MZ 여성 8명의 취미는 술도 아니고 낚시는 더더욱 아니다. A는 아이돌 콘서트 쫓아다니며 사진과 영상 찍어 SNS에 올린다. 그 바닥에선 꽤 알아주는 인플루언서다. B는 주말마다 홍대 팝업스토어 누빈다. 캐릭터 굿즈와 스티커를 모은다. C는 퇴근하면 집에 틀어박혀 ‘다꾸’(다이어리를 도대체 왜, 어떤 방식으로 꾸미는지 모르겠으나 이런 행위를 통칭해 다이어리 꾸미기, 줄여서 ‘다꾸’라고 한단다)에 열중한다.

대체로 이런 식이다. MZ 여성 타깃으로 온라인 마케팅하는 게 주 업무라 더욱 그럴 테지만, 8명 모두 개성이 넘친다. 다들 집단의 일원보단 개인이길 바란다. 일과 삶이 분리되길 원한다. 거짓말 조금 보태 형님들과는 집안 숟가락 개수까지 공유했다. 이 동네에선 사적 대화는커녕 나이 묻는 것조차 실례다. 바로 옆에 있는데도 메신저로 대화한다. 쌍욕 대신 이모티콘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단 얘기가 아니다. 그 틈이 너무 커 애먹는다고 투정하는 거다. 며칠 전이었다. MZ 여성 8명과 회의하다가 답답한 마음에 한 소리 한답시고 이렇게 말했다.

“깊게 파려면 넓게 파야 합니다. 문학, 역사, 철학, 심리학, 통계학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

실수였다. 사람이 눈으로도 욕할 수 있다는 걸 그날 처음 깨달았다. 깊이 반성했다. ‘꼰대’가 되지 말자고 다짐했는데, 정신 차려보니 내가 바로 그 꼰대다. 쉽지 않다. 안정환의 반지 키스를 모르는 이들과 어떤 대화를, 아니 대화 자체를 나눌 수 있긴 한 걸까.

송주홍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