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가 창고를 개조한 기역 자 긴 복도형 전시장인 아르세날레의 거의 맨 끝에 올해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국가관 황금사자상을 받은 바레인관이 있었다. 낮은 천장에 투박한 포대 자루를 켜켜이 쌓아 만든 간이 쉼터가 전시됐다. ‘히트 웨이브’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공사장 인부들이 더위를 피하는 흔한 휴식 방식처럼 보인다. 하지만 낮은 천장에 통풍 시스템과 좌석을 냉각시키는 방식을 갖춰 사막의 건설 현장과 공공 공간을 위한 쉼터로 제안됐다.
제19회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가 개최 중인 이탈리아 베니스를 최근 다녀왔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미술전과 건축전이 매년 번갈아 열린다. 각국이 자체적으로 뽑은 총감독이 하는 국가관 전시와 비엔날레 위원회가 선정한 총감독이 특정 주제 하에 전시를 꾸미는 본전시로 나뉜다. 올해는 MIT교수로 재직 중인 이탈리아 건축가 카를로 라티(54)가 총감독을 맡았다. 그가 제안한 주제는 ‘지성, 자연, 인공, 집단(Intelligens. Natural. Artificial. Collective)’이다. 그는 당대를 “지구가 역사상 가장 높은 기온을 기록한 가혹한 시기”라 규정하고 중대한 전환기 건축가의 태도를 ‘완화’보다는 ‘적응’으로 전환한 것을 주장했다.
국가관 전시라도 아무래도 총감독이 제시한 주제 흐름에서 비켜날 수 없다. 건축가 안드레아 파라구나가 기획한 바레인관 전시도 적응의 관점으로 읽혔다. 즉 “건축의 미래는 자연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협력하는 것에 있다”라는 메시지가 느껴진다.
총감독이 본전시에 초대한 750여명 참가자 중에서 뽑힌 황금사자상은 베니스 운하의 물을 정화해 커피로 제공하는 미국의 건축 스튜디오 ‘딜러 스코피디오+렌프로’의 실험적 카페 ‘운하 카페’ 프로젝트에 돌아갔다. 운하 카페도 환경에 대한 ‘적응’이라는 맥락 아래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전시의 초입은 묵시록적이다. 전시를 위해 가동한 모든 에어컨의 실외기를 입구 전시장에 한꺼번에 모았다. 그래서 숨 막히는 열기를 뿜어져 나오는데 깜깜한 바닥의 검은 웅덩이는 한 줄기 빛을 반사한다. 건축이 지녀야 할 낙관적 태도를 상징하는 것처럼 말이다.
참가자들은 예년처럼 건축가 위주가 아니다. 엔지니어, 수학자, 철학자, 예술가, 요리사, 목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초대됐다. 인공지능(AI) 중심의 사고를 넘어 더 폭넓은 지성과 협업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본 전시에는 인공지능이 만든 설계 도면도 있지만, 굴 껍데기로 만든 벽돌, 자연과 인공재료를 결합한 부유 조각품 ‘선 스톤’, 북극의 얼음방 등이 전시돼 있었다. “자연 재료야말로 순환 가능성을 제공하고 지속적으로 재사용될 수 있다”는 건축 방향이 녹아 있다.
전시장 벽면에 병풍처럼 늘어선 패널의 아카이브 전시 ‘동굴에서 벗어나다(Out of Cave)’는 인류와 생물 다양성 사이의 깊은 연결 고리를 탐구한다. 동굴 밖에서 식물을 채집하는 호모사피엔스와 21세기의 과학자를 병치시킨 이미지는 진보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다.
각국이 올림픽 하듯이 꾸미는 국가관 전시는 기후 위기에 대한 경고, 이에 대한 건축적 대응, 이것과 상관없는 제3의 주제 등 세 가지로 요약된다. 스페인관은 국가관임에도 총감독이 내세운 주제에 전시를 맞췄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외부성’(한 경제 주체의 활동이 제3자에게 의도하지 않은 편익이나 비용을 발생시키지만, 이에 대한 대가가 지불되지 않는 현상)과 반대 개념인 ‘내부성’을 내세워 건축이 가지는 심리적 가치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전시를 꾸몄다.
독일관도 기후위기에 경종을 울린다. 실제 ‘경종’을 울리는 작은 영상이 나오는 입구를 지나면 극장 같은 대형 스크린에 홍수 등 기후 위기 관련 뉴스를 전하는 각국 앵커들, 지구의 앞날에 암울해 하는 아이들 등 영상 작업을 통해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경고한다. 기후 위기에 대한 건축적 대응은 캐나다관이 눈에 띈다. 캐나다관은 박테리아, 남조류를 일컫는 피코플랑크톤에 대한 연구를 통해 플랑크톤이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이고 대신 산소를 내보내며 칼슘 조형물을 생성하는 실험적 도전을 전시했다.
제3의 주제도 흥미롭다. 미국관은 ‘포치(Porch, 건물의 출입구 앞에 위치해 지붕을 덮은 공간) 라이프’를 주제로 삼았다. 서부 영화에서 본 20세기 포치에서 21세기 현대 건축에서의 변형 포치까지 다루며 새로운 공동체를 여는 키워드로서 포치 문화를 다뤘다. 스칸디나비아관은 건축과 화석 연료의 미래를 다루는 ‘산업 근육’을, 네덜란드관은 게임존 등 타인과 더불어 지내는 일상의 공간을 어떻게 재정의할지를 고민했다.
한국관은 파빌리온 개관 30주년을 기념해 ‘두껍아 두껍아: 집의 시간’을 주제로 한국관의 건립 과정을 살펴보는 한편, 국가관의 건축적 의미와 지속가능성을 탐구했다. 과거 국가관은 화이트큐브 전시장처럼 유리창을 가렸지만 올해는 창은 물론 유리로 된 천장까지 가림막을 걷어낸 것이 눈에 띈다. 전시장 자체부터가 자연 친화적이됐다. 한국관이 대표적인데 처음으로 옥상까지 전시장으로 활용했다. 11월 23일까지.
베니스=글·사진 손영옥 미술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