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기간 중 행사장 주변 작은 전시장에선 베니스를 방문하는 건축계 인사들을 겨냥한 작은 병행 전시들이 열린다. 올해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에서도 코로나 사태 이후 단골 주제인 기후 위기 이슈가 되풀이돼 주제면에서는 식상하다. 이런 가운데 도표, 그림 등 도해를 뜻하는 ‘다이어그램’을 내세운 병행 전시가 있어 신선하다. 프라다파운데이션에서 하는 ‘다이어그램: AMO/OMA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세계적 건축가 렘 콜하스가 운영하는 글로벌 건축사무소 OMA와 그 산하의 싱크탱크 AMO가 기획했다.
이 전시는 단순한 건축 도구를 넘어 사고의 시각적 언어로서의 다이어그램을 조명한다. 대형 확대한 사진 인쇄물 하나 없다. 진열장과 벽면의 다이어그램과 책자가 전시물이 전부라 자칫 밋밋할 수 있는데도 관람객을 오래도록 붙잡는 것은 깊은 리서치가 뒷받침된 때문으로 보인다.
전시는 르네상스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이어그램이 어떻게 문화 전반에 걸쳐 사용되어 왔는지를 폭넓게 탐구한다. 건강, 이주, 전쟁, 불평등 등 인류에게 지금 긴급한 아홉 가지 주제로 구성됐다. 다이어그램은 겉보기에는 중립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이면에 권력과 상업적 목적, 이데올로기를 어떻게 담고 있는지를 섬세하게 보여준다. ‘1500-1805 상업사’(1805), ‘법 위반자에 대한 하나님의 구제 계획’(1912), ‘미국 인구에서 흑백합병’(1900) 등 스탠포드대학 도서관 같은 유수의 기관의 서가 깊숙이 소장된 희귀 자료들이 눈앞에 펼쳐져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절제된 구성 속에 밋밋한 도해만으로도 몰입감을 제공하며 아이디어가 어떻게 시각적으로 구현되는지를 보여주는 전시다. 11월 24일까지.
베니스=글·사진 손영옥 미술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