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 흥행이 전 세계 팬들의 지갑을 열고 있다. 한국 전통 문화와 K팝을 소재로 한 캐릭터 굿즈가 역직구 시장을 강타했다. 신라면과 새우깡을 연상시키는 작품 속 간식에 농심은 광고비 한 푼 들이지 않고 글로벌 입소문을 탔다. 중국에서는 불법 스트리밍과 짝퉁 코스튬이 기승을 부리며 한류 지식재산권(IP) 보호망이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번개장터는 ‘케데헌’ 흥행으로 올해 K굿즈 역직구 건수와 거래액이 각각 78%, 56% 증가했다고 14일 밝혔다. 매출을 견인한 것은 전통 민화를 소재로 한 국립중앙박물관의 ‘뮷즈’(뮤지엄+굿즈) 상품들이다. 극 중 호랑이 ‘더피’와 까치 ‘수씨’ 캐릭터가 민화 ‘작호도’를 모티프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국립중앙박물관의 까치와 호랑이 배지(사진)는 재입고 직후 품절됐다. 이외에도 오르골·벙거지 모자·에어팟 케이스는 각각 미국·캐나다·싱가포르로, 전통 갓 모양 볼펜은 네덜란드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식품업계에서도 의외의 수혜주가 등장했다. 극 중 주인공들이 공연 전 즐긴 ‘매운 감자칩’은 새우깡을 빼닮았고, 컵라면 ‘동심 라면’은 ‘농심’과 발음이 비슷해 화제를 모았다. 넷플릭스는 영화 공개를 앞두고 미국 뉴욕에서 컵라면 시식 행사를 개최하며 한국 라면 문화를 적극 홍보하기도 했다. 농심 측은 “PPL 계약이나 협조 요청이 없었다”고 밝혔지만, 글로벌 소비자들에게서 “실제 제품은 어디서 살 수 있느냐”는 문의가 쏟아지며 자연스러운 홍보 효과를 거뒀다.
흥행 뒤에는 그늘도 짙다. 넷플릭스가 공식 서비스되지 않는 중국 본토에서 불법 스트리밍이 공유되고 있다. 알리익스프레스 등 현지 C커머스에서는 ‘케데헌’ 캐릭터 의상·소품을 모방한 제품이 10만원대에 버젓이 거래되며 IP 침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국 리뷰 사이트 더우반에는 “(케데헌이) 중국 문화를 도용했다”는 근거 없는 주장도 실린다.
중국에서 한국 콘텐츠의 불법 시청 사례가 처음은 아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을 거둔 ‘오징어게임’, ‘폭싹 속았수다’, ‘더 글로리’ 등 주요 작품의 불법 공유가 잇따르며 저작권 침해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등 외신은 2021년 ‘오징어게임’ 시즌1 공개 당시 “중국 공장들이 오징어게임 굿즈 생산에 분주하다. 관련 인기 상품 상당수가 중국 광둥성 광저우와 선전, 안후이성의 기업들이 판매하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만큼, 단순 유통 활성화에 그치지 않고 제작사와 플랫폼이 손잡아 글로벌 사후 모니터링과 저작권 보호 협업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다연 기자 id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