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억원의 공사비가 투입된 서울 양천구의 신축 상가가 ‘유령 건물’이 될 처지에 놓였다. 건축허가를 내준 구청이 완공 후 돌연 고시 위반을 이유로 사용 승인을 거부한 탓이다. 입점을 준비하던 소상공인들은 생계를 위협받고 있다고 호소했다.
14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양천구 오목교역 인근의 지상 9층(지하 1층) 규모 상가는 완공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텅 빈 상태다. 건축주가 지난 5월 사용 승인을 신청했지만 양천구청은 최근 ‘건축선 규정 위반’을 이유로 이를 반려했기 때문이다. 도로경계선(보도 포함)으로부터 3m 뒤로 건물을 지었어야 하는데 현재 건물이 도로경계선과 0.5m밖에 떨어지지 않아 규정 위반이라는 취지다.
문제는 이 규정이 건축허가 단계에서는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구청은 건축선을 정한 고시를 허가 당시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구청 측은 허가 과정에서 건축선 관련 고시를 인지하지 못한 사실은 인정했지만 건축주와 건축사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구청 관계자는 “고시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선 내부적으로 조사가 진행될 것”이라면서도 “공무원은 현장 감시의 의무가 없다. 건축사는 설계 당시 건축선 제한이 존재함을 확인할 주의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관련 건물에 대해 건축선을 지키지 않아 보도가 좁다는 등의 민원이 계속 들어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구청이 사용 승인 결정을 불허하면서 입점이 예정돼 있던 소상공인들은 생계를 위협받고 있다. 해당 부지에서 10년 이상 프랜차이즈 음식점을 운영해온 50대 여성 유모씨는 “본사에서 최대한 편의를 봐주며 기다려줬는데 시간이 늘어지며 영업권을 반납해야 할 위기”라며 “리모델링을 위해 받은 수억원의 사업자 대출도 회수될까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커피전문점 재개장을 준비하고 있던 정모(72)씨도 “구청이 문제 없도록 조치하겠다고 해놓고는 갑자기 번복했다”며 “미리 뽑아놓은 직원들한테 두 달치 급여를 주고 내보낸 상황”이라고 말했다. 건축주 A씨는 지난달 18일 구청의 건축물 사용 승인 거부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전문가들은 사용 허가 승인 권한이 있는 구청 측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황대희 부동산 전문 변호사는 “구청은 허가의 주체로서 규정을 당연히 알고 있었어야 한다”며 “사용 승인을 거부할 공익적 이유가 있더라도 손해배상은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이현 기자 2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