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핫한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최초 제안자는 김종영 경희대 교수다. 각 지역 국립대들을 ‘대학통합네크워크’로 묶자는 오래된 주장을 ‘서울대 학위 양적 완화론’이라는 기발한 정치 프로젝트로 탈바꿈시킨 게 김 교수였다.
그간 서울대의 폐해를 지적한 이들은 서울대 폐지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학부를 없애고 석·박사 과정만 남겨 학벌로서의 서울대를 해체하는 방식이다. 당연하게도 구성원 반발이 거셌다. 김 교수는 반대 방향에서 접근했다. 서울대 학위가 귀해서 다들 서울대를 원하니 서울대를 10개쯤 만들자. 공급을 늘려 가치를 떨어뜨리는 전략. 완벽한 역발상이다.
처음 듣는 사람들은 황당해한다. 서울대를 늘린다고 교육 소비자의 1등 경쟁이 사라지나. 10개 서울대의 소위 ‘입결’이 표로 만들어지고, 명문 사립대 앞에는 더욱 긴 줄이 생기지 않겠나. 어차피 노동시장 병목이 대입 병목보다 심하다. 정규직 대기표라도 앞줄에서 뽑자면 결국 또 다른 1등 경쟁이 생길 수밖에 없다.
타당한 지적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대를 늘리자는 그의 아이디어에 설득된 이유는 저서 ‘서울대 10개 만들기’에서 강조한 2가지 때문이다. 대입 선발제도에 손대지 말고 대학부터 개혁하자는 게 첫 번째. 수십년간 입시제도를 무수히 바꿨지만 교육지옥은 심화됐다는 게 그의 문제의식이다. 정시와 학종 논쟁도 마찬가지다. 대학 서열 해체 없이는 정시지옥과 학종지옥 중 덜 나쁜 지옥을 고르는 일이 될 뿐이다. 무엇보다 입시를 논하는 순간, 논의는 중상층 학부모와 사교육 업계에 포획된다고 했다. 깊이 공감한 대목이다.
나 역시 학부모의 한 사람으로 내 아이의 유불리에 맞춰 입시제도에 대한 선호가 바뀌는 걸 체험했다. 공동체에 좋은 제도가 내 아이 입시에 유리한 건 아니다. 둘은 다른 것이다. 너무 달라서 개인의 내면에서 둘은 따로 놀 때가 많다. 교육 개혁가들의 내로남불이 왜 그렇게 흔하겠나. 그러므로 강력한 이해당사자인 학부모들이 교육개혁을 좌초시키는 걸 막으려면 입시제도는 일단 미뤄두는 게 낫다.
덧붙여 그는 교육의 모든 문제 대신 가장 중요한 문제를 풀자는 제안도 했다.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최소주의 접근법이다. 대학 서열 해체를 위해 독일식 대학 평준화를 도입하는 ‘완벽한’ 해법 대신 서열을 인정하고 다원화하는 서울대 늘리기를 택한 이유다. 9개의 서울대가 추가되면 전체 입학정원의 10%, 지역 국립대 통합이 순조롭다면 18%쯤 명문대 입시의 문이 넓어진다. 서울대 0.5%를 향한 병목은 딱 그만큼만 풀려나갈 거다. 절충안이다.
성패를 예단하기는 어렵다. 고등교육에 연간 3조원대의 추가 예산을 마련하고 이걸 배분해서 대학 구조조정과 지역별 특성화를 이뤄내자면 찬반이 격렬할 수밖에 없다. 당장 나온 반론이 서울대 위기론. 최근 조선일보에 ‘서울대 10개보다 서울대보다 5배 좋은 학교가 시급하다’는 홍콩과기대 교수의 인터뷰가 나왔다. 같은 대학의 또 다른 교수는 방송에 나와 거점 국립대 9곳 대신 2~3곳만 선별 지원하고 대신 그 돈으로 연·고대를 키우자고 주장했다. 될성부른 최상위권 대학에 집중 투자하자는 취지다.
글로벌 경쟁에서 엘리트 교수들이 느끼는 위기의식을 평가할 자격이 내게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전문가로서 그들의 판단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 전체가 교육지옥과 수도권 집중으로 집단자살 수준의 재생산 위기에 직면했다. 누구라도 밸브를 돌려 증기를 빼지 않으면 압력솥은 폭발한다. 우리가 공유한 위기감의 수준이다. 그래서 나는 5배 좋은 서울대보다 서울대 10개에 찬성하는 쪽이다. 설사 실패하더라도 뭐든 해야 하지 않겠나.
이영미 영상센터장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