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정권 영부인·현 장관 후보자 논문
번역기 잘못 돌린 표현 그대로 노출
‘서울대 10개’ 兆단위 예산 대형 사업
학생·학부모가 그의 첫걸음 공감할까
번역기 잘못 돌린 표현 그대로 노출
‘서울대 10개’ 兆단위 예산 대형 사업
학생·학부모가 그의 첫걸음 공감할까
‘날림 논문’은 종종 저자의 사소한 실수로 그 민낯을 드러내곤 합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의 ‘유지(Yuji) 논문’이 대표적입니다. 김 여사가 2007년 발표한 ‘온라인 운세 콘텐츠의 이용자들의 이용 만족과 불만족에 따른 회원 유지와 탈퇴에 대한 연구’라는 논문을 둘러싼 논란이죠.
김 여사는 이 논문 표지의 한글 제목 아래 영문 제목을 달아놨는데, ‘회원 유지’를 ‘member Yuji’로 번역했습니다. 회원 수를 유지한다는 의미로 쓰인 ‘유지’를 사람 같은 고유명사로 보고 발음대로 Yuji라고 써놓은 것이죠. 번역 프로그램 돌려놓고 살피지도 않은 낯 뜨거운 실수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유지 논문 등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습니다. 김 여사 논문을 비판하면서 연구 윤리의 수호자임을 자처했습니다. 국정감사를 온통 김 여사 논문 검증 시간으로 할애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이 정권을 잡고 교육부 장관 후보자로 내세운 인물이 이진숙 전 충남대 총장입니다. 이 후보자를 둘러싸고 불거진 연구윤리 의혹은 김 여사의 유지 논문과 ‘오십보백보’로 보입니다.
이 후보자는 충남대 건축공학과 교수 시절 제자 논문들을 여럿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먼저 이 후보자가 2009년 대한건축학회에 낸 논문은 한해 전 발표된 제자의 석사 학위 논문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습니다. 판박이 같은 문장들이 이어지는데, 제자 논문의 ‘오히려 역효과를 초례하고 있다’는 문장이 이 후보자 논문에도 똑같이 실렸습니다. 초례가 아니라 초래입니다. 제자 논문의 ‘하향조명은 거의 사용하고 않았으며’란 비문은 이 후보자 논문에도 똑같이 등장합니다.
쏟아지는 표절 단서 가운데 백미는 ‘wjd도 논문’입니다. 표절 의혹을 받는 제자 논문 가운데 ‘대략 10m 정도에서 봤을 때 촛불 하나의 크기’란 문장이 있습니다. 이 후보자 논문에는 ‘대략 10mwjd도에서 봤을 때 촛불 하나의 크기’라고 돼 있습니다.
간단한 실험을 해봅시다. 먼저 한글 자판으로 ‘10m 정도’를 입력해봅니다. 그 다음 ‘10m’를 입력하고 띄어쓰기 없이 ‘정도’를 입력합니다. 그럼 이 후보자의 논문처럼 ‘10mwjd도’로 쓰이죠. 미터를 뜻하는 ‘m’를 쓰고 띄어쓰기 빼먹고 ‘정도’를 입력한 결과입니다. 제자의 논문을 컴퓨터 옆에 올려놓고 배껴 썼다는 얘기가 됩니다. 번역기 잘못 돌려놓고 그대로 영어 제목을 써놓은 김 여사의 모습과 오버랩 되는 장면입니다.
이 후보자는 이재명 대통령의 서울대 10개 만들기 공약을 제안한 인물로 알려졌습니다. 지역의 거점 국립대 9곳을 서울대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구상이죠. ‘인(in)서울’ 중심의 대학 서열 체제를 허물어 지역 대학을 활성화하면 지역도 살고 전반적인 고등교육 경쟁력도 올라간다는 논리입니다. 이 후보자는 지역 거점 국립대 총장 경험을 살려 이를 실현할 적임자라고 주장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성패는 결국 연구 생태계의 윤리적 기반에 달려 있습니다. 교수 사회의 인식 전환과 내부 혁신 없이는 공허한 구호에 그칠 공산이 큽니다. 이 후보자에게 그런 리더십이 있을까요. 그가 교육 장관에 올라 이 정책을 추진하게 되면 교수와 연구자들에게 ‘연구 똑바로 하라’고 주문하는 위치가 됩니다. 예를 들어 논문 하나를 여러 학술지에 발표해 실적을 부풀리는 꼼수를 차단해야 하죠.
이 후보자는 2018년 2~3월 실험 설계와 결론이 같은 논문을 다른 학술지에 게재했습니다. 두 논문의 표절률은 35%여서 ‘게재 불가’ 마지노선 20%를 훌쩍 넘겼지만 서로 인용했다거나 참고했다는 표기도 하지 않았습니다. 학계에서는 실적 부풀리기용 ‘논문 쪼개기’라는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교육부가 2015년부터 연구부정의 한 갈래인 ‘부당한 중복 게재’로 엄격히 금지하는 사안입니다.
건전한 연구 생태계 조성을 위해서는 교수의 갑질도 척결해야 합니다. 특히 만만한 제자들의 논문을 가로채 자기 실적으로 삼는 행태에 철퇴를 가해야 합니다. 이 후보자는 제자의 학위 논문과 유사한 논문을 학술 논문으로 발표하며 자신을 1저자로 올렸습니다. 학계에서는 이런 행위를 논문 가로채기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학부생과 대학원생 제자의 신체를 활용해 자기 논문의 데이터를 획득하기도 했습니다. 제자 18명을 동원해 시각적 자극을 주고 눈의 피로감과 불쾌감을 측정하는 인체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이 후보자는 제자들 동의를 받았다고 했지만 교수라는 우월한 지위를 이용한 갑질이란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이 후보자는 제자들의 동의를 받았다는 점도 입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성공하려면 우수한 인재들이 지역의 국립대들에 많이 진학해야 합니다. 이 공약을 실행하는 교육 장관이라면 수험생·학부모에게 서울의 유명 대학보다 비수도권 국립대 진학이 더 좋은 선택이라고 설득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후보자는 두 딸을 조기 유학 보냈습니다. 특히 둘째의 경우 국내에서 의무교육 단계인 중학교도 졸업하지 않고 부모 없이 유학을 보내 초·중등교육법 위반 지적까지 받고 있습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대형 프로젝트가 될 겁니다. 전국 4년제 대학들의 협의체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추산한 비용은 한해 3조원, 5년 동안 15조원입니다. 앞선 정부들의 수많은 대학 재정지원 사업처럼 ‘돈 잔치’에 그치지 않길 바랍니다. 그 첫걸음은 교수와 대학원생, 학부모, 학생들이 고개를 끄떡일 수 있는 인물을 교육 장관에 세우는 일 아닐까요.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