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김의 자리에 있던 PK, 이젠 돌봄 받는 예배자로 서다

입력 2025-07-15 03:15
누군가를 돌보는 자에게도 돌봄은 필요하다. 목회자를 비롯한 교회 내 교역자나 환자를 돌보는 간병인, 각 기관의 봉사자나 상담사 등 돌보는 자들은 정서적 탈진과 물리적 어려움을 겪어도 이를 제대로 호소하지 못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들의 피로도는 심각성에 비해 간과돼 왔다. 더 늦기 전, 돌보는 자의 휴식과 회복을 위한 환경을 조성할 때 교회와 사회도 안전할 수 있다. 3부 ‘돌봄과 안식’은 돌보는 자를 위한 돌봄 사례를 발굴해 전한다.

목회자 자녀(PK)를 돌보는 공동체 PK러브 회원들이 최근 서울 구로구 다움교회에서 열린 제79회 화요예배에서 찬양하고 있다. PK러브 제공

“주님 여기 계시기에 내가 반석 위를 걸어가리라.” 서울 구로구의 한 상가 지하에 있는 한 교회 예배당 안. 50여명의 청년과 청소년이 눈을 감고 찬양을 올리고 있었다.

PK러브 대표인 유한영 다움교회 목사. PK러브 제공

최근 방문한 다움교회(유한영 목사)의 79번째 화요예배 현장이다. 이곳에서 조용히 눈물 흘리며 흐느끼고, 무릎 꿇고 기도하는 이들은 모두 PK(Pastor’s Kid), 목회자 자녀들이다. 매달 마지막 주 화요일 저녁은 부모의 사역을 함께 짊어지고 자라온 이들이 그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돌봄 받는 하나님의 자녀’로 서는 시간이다.

이 예배에 참여하는 이들의 연령대는 20대부터 40대까지 다양하다. 같은 점이 있다면 모두 이곳에서 ‘존재 회복’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예배 찬양과 안내, 간식 준비 등 각자 자원한 역할을 섬기지만, 예배가 시작되면 섬김이의 자리에서 벗어나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자로 전환되는 자유가 있어서다.

역할만 있고 돌봄은 없던 PK를 품다

이들은 이 교회 유한영 목사가 2005년 목회자 자녀를 돌보기 위해 설립한 신앙 사역 공동체 PK러브 회원들이다. PK러브는 청년부조차 없는 미자립교회에서 방황하는 목회자 자녀들의 모임으로 시작했다. 유 목사 본인이 개척교회 목회자 자녀였기에 누구보다 그 방황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PK들은 교회 안에서 ‘돌보는 자’로 역할 하길 요구받는데, 정작 자신들은 예배가 무너지고 부모에 대한 무의식적 원망이 있어 신앙적으로 위태로운 상태”라고 말했다. 유 목사는 특히 PK들이 겪는 ‘이중 부재’에 초점을 맞춘다. 신앙적으로 어려울 땐 목회자가 아닌 아버지가 등장하고, 평상시 생활에선 목회자만 있고 아버지가 없는 상태라는 것이다. 그는 “교회 안에서 ‘아빠라고 부르지 마라’는 말을 듣고 자란 자녀들의 고통을 반드시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PK러브엔 현재 전국의 목회자 자녀 12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2024년 유 목사가 개척한 다움교회는 이들의 아지트가 됐다. 매월 화요예배와 ‘기도반’ 소그룹 모임이 이곳에서 이어진다. 기도반은 리더 한 명이 PK 10명을 양육하는 돌봄 공동체다. 처음 경험하는 돌봄의 관계 속에서 청년들은 실질적 변화를 경험한다.

이곳에서 만난 김요셉(33)씨는 “PK러브를 만나기 전까지 저는 교회 안에서 기능적으로만 존재하는 사람이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중학교 1학년 시절, 예배 시간이 잘못 전달돼 누군가 교회 문을 열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자 사역 준비 중이던 부모가 자신을 새벽에 깨워 교회로 향하게 했던 일을 기점으로 꼽았다. 그는 “20분 거리의 교회로 정신없이 달려가는 내내 ‘나는 부모님의 손과 발일 뿐 또래처럼 돌봄 받는 자녀가 아니구나’ 생각이 들었다”면서 “이후 교회 안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굳어졌고, 그사이 내 영혼은 돌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변화는 대학 입학 후 찾아왔다. 부모 권유로 PK러브 주관 세미나에 참석했다가 공동체와 연결됐다. 그가 군 복무 중 부상으로 힘들었을 때 공동체 구성원들이 매일 돌아가며 전화하고 매주 면회를 왔다. 김씨는 “그때 처음으로 내가 사랑받는 영혼이라는 걸 깨달았다”며 “이들을 통해 부모님에 대한 시선이 바뀌고, 나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어주고 싶다는 마음이 처음 생겼다”고 말했다.

공감 공동체에서 다시 세운 예배

이형일(40) 목사도 모임 돌봄을 통해 변화한 대표적 사례다. 중학교 2학년까지 ‘모범 PK’였던 그는 아버지의 사역지가 바뀌고 강원도에 정착하면서 달라졌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기대와 책임 속에서 분노가 쌓였다. “눈이 오면 치워야 했고, 예배에선 완벽해야 했고, 늘 학습된 신앙만 있었죠.” 그는 결국 대학 입학과 동시에 교회와 단절했다.

지난 2월 경기도 남양주시 예정교회에서 열린 목회자자녀세미나 참가자들이 서로 손을 모은 모습. PK러브 제공

그런데 2010년 참석한 목회자자녀세미나에서 성령 체험을 하며 모든 것이 달라졌다. 함께 울고 공감하며 기도하는 공동체 안에서 회복을 경험한 것이다. 그는 “‘아버지를 용서하라’는 기도 인도를 듣고 속에서 욕이 터져 나왔는데,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진짜로 만나고 예배가 회복됐다”고 말했다. 그날을 계기로 신학대학원에 입학했다. 현재 남가주 사랑의교회 파송을 앞둔 그는 “PK러브에서 배우고 헌신했던 것들이 사역과 삶의 중심이 됐다”며 “지금은 내 아이도 생기고 목회를 해보니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실제 PK러브는 모임의 정체성을 ‘공감 공동체’와 ‘예배하는 공동체’로 규정한다. 유 목사는 “PK들은 어디서도 공감받기 어렵다. 또래도, 교회도 그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며 “우리는 이들에게 관계적 안식처가 되어 함께 기도하며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동행자가 되려 한다. 공동체를 통해 비로소 ‘돌봄 받는 자’가 된다”고 말했다. 무너진 예배를 되살리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유 목사는 “부모와 갈등이 있는 자녀는 자연스레 설교도, 찬양도 들리지 않게 된다”며 “우리는 PK들이 다시 예배할 수 있도록 돕는 공동체를 꿈꾼다”고 말했다.

한 사람 회복이 가정, 교회의 회복으로

한 사람의 회복은 그의 관계를 따라 가정과 교회의 회복으로 이어지게 된다. PK러브가 관계를 중심으로 한 위로를 추구하는 이유다. 한 목회자 가정을 초청해 가족사진을 찍고 레스토랑 식사와 디저트 데이트까지 하루 전 일정을 선물하는 ‘꿈소리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지난 10년간 30여 가정이 이 프로젝트를 통해 무너진 가족 관계 회복의 실마리를 찾았다.

현하영(31)씨도 그중 하나다. 현씨는 “중학생 시절 가족의 개척 목회로 힘들었을 때 혼자 책임을 감당하게 했던 오빠에 대한 미움과 벽이 있었다”면서 “그런데 10년 전 ‘꿈소리 프로젝트’를 통해 하루를 함께 보내며 회복이 시작됐다”고 했다. 그는 “그날 오빠가 웃으며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가족이 이렇게 마주 앉아 먹은 게 언제인지 모르겠다’는 말이 나왔다”며 “이후 가족 간의 관계와 예배가 회복됐고, 오빠도 PK러브 공동체 모임에 함께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9년 서울 경복궁 앞에 모인 사모트립 참가자들. PK러브 제공

목회자 자녀 못지않게 지쳐 있는 사모들을 위한 ‘사모트립’ 사역도 있다. 목회 현장을 벗어난 여행지에서 쉼과 회복을 누리도록 돕는 것이다. 지난 10일 경기도 남양주 예정교회에서 시작된 ‘사모터치워십’은 매달 한 번씩 사모들에게 오직 하나님 앞에 서서 예배하고 교제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봉사 없이 자신의 예배를 드릴 기회를 주는 것이다. 유 목사는 “사모대학이나 상담센터는 많지만 사모님들만을 위한 예배는 드물다. 영적으로 안식을 누리는 모임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2024년 충남 태안 한 교회 목회자 부부에게 선물을 전달하는 PK러브 사역팀. PK러브 제공

예배와 기도모임을 넘어 실질적인 돌봄 사역도 진행된다. 현실적인 어려움 앞에서 인간적으로 좌절해 무너지지 않기 위함이다. ‘출동 사역’은 PK러브 사역팀이 직접 회원이 요청에 따라 전국 각지에 있는 교회를 방문해 여름성경학교나 임직식, 농촌 봉사 등의 사역을 지원한다. 경제적 위기를 겪는 PK에게 비공개 지원을 제공하는 ‘몰랐지? 사역’도 있다.

‘조금드림 사역’은 따뜻한 울림을 나누는 사역이다. 매달 선정된 작은 교회를 찾아가 간식, 생필품, 30만 원의 현금을 전달하며 위로한다. 특히 “교회를 위한 헌금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작은 위로다. 개인과 가정을 위해 쓰시길 바란다”라는 메시지가 함께 전해진다. 교회를 섬기는 사역자들 자신도 돌봄이 필요한 존재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유 목사는 “우리는 세상이 모르는 그들의 눈물과 견디고 버틴 시간을 안다”며 “누구보다 하나님의 위로가 함께한다는 것을 전하려 한다”고 말했다.

김수연 기자 pro11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