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향숙 (12) 신체심리학으로 치유혁명… 하이패밀리 사역에 접목

입력 2025-07-15 03:04
김향숙 대표가 신체심리학자로 활동하던 2017년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동작을 취한 모습. 김 대표 제공

2007년 겨울 시작한 춤 세미나는 내 인생의 변곡점이었다. 알고 보니 댄스 테라피(Dance Therapy)라는 학문이 있었다. 1박 2일 과정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정식과정에 등록해 3년간 공부했다. 어느덧 갱년기의 늪에서 탈출해 있었다. 갱년기 때 던졌던 질문이 발전했다. “왜 몸을 움직였는데 마음과 영혼까지 회복되는 걸까.”

해답을 찾아가는 여정 속에서 하나님은 또 다른 학문을 준비하고 계셨다. 무용·동작치료(Dance Movement Therapy)였다. 인지 정서 행동의 통합을 위해 몸의 움직임을 심리치료적으로 활용하는 학문이었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공부가 2009년부터 5년간 이어졌다. 경기도 용인정신병원에서 4년간 치료사로 일하며 1000여건의 임상경험을 쌓았다. 마침내 2013년 슈퍼비전(경험이 많은 전문가가 경험이 부족한 전문가나 수련생을 지도)이 가능한 ARDT(공인무용동작치료전문가) 자격을 취득했다.

나는 이 놀라운 학문을 기독교적 가치와 함께 일반인, 특히 가정이 소명인 하이패밀리 사역에 접목하고 싶었다. 그러나 무용·동작치료사라는 용어는 적절하지 않았다. 춤을 가르치거나 배우는 것이 아님에도 사람들은 종종 오해하고 부담을 느꼈다. 고민 끝에 나를 ‘신체심리학자’로 포지셔닝했다. 신체심리치료 관련 콘텐츠를 개발하고 하이패밀리 사역에 적용했다.

현재 128차까지 진행한 ‘이모션 코칭’ 중 감정치유를 진행할 때였다. 불안장애를 앓는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이 함께 온 엄마 손을 강하게 뿌리쳤다. 다시 잡으려 하자 엄마를 노려보더니 아예 등을 돌려버렸다. 몸은 분노 덩어리였다. 치유적인 접촉 몸놀이를 계속 제공했다. 뛰고 구르고 어루만지고 껴안으며 엄마와 아들의 몸이 만났다. 차츰 아들의 화가 풀렸다. 마침내 엄마 품에 안긴 아들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마칠 무렵 아들은 양팔로 엄마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아들이 남긴 소감이다. “엄마가 저를 보는 순간 싸움을 걸고 싶었어요. 엄마가 저를 만지는 순간 싸움을 잊어버렸어요.”

이것이 바로 몸의 치유성이다. 몸속에는 마음을 치유하는 약이 있다. 하나님이 신묘막측하게 지으셨고(시 139:14) 몸 안에는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이 들어 있다.(롬 1:20) 나는 유레카를 외쳤다. 상한 감정을 치유하는 하나님(시 147:3)을 고백했다. 신비로웠다. 머리로 아는 1차 교육·치유 방식에서 머리로 알고(Knowing) 가슴으로 느끼고(Feeling) 몸으로 익혀서(Practicing) 삶에서 행하는(Doing) 4차 교육·치유 방식으로의 혁명이 시작됐다.

2012년 하이패밀리에 무용·동작치료센터를 개설하자 개인 상담부터 교회 기업 학교 정부 기관 등에서의 진행요청까지 쇄도했다. 신체심리치료사 양성이 시급했다. 2015년 신체심리치료학과를 개설하고 한국신체심리치료협회(KOBA)를 발족했으며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인증 자격 시스템을 갖췄다. 2016년에는 명지대 대학원 예술심리치료학과 객원교수로 활동했고, 그간의 임상 결과를 집대성한 ‘신체심리치료기법과 적용’(학지사)을 2024년 출간했다. 갱년기라는 역경의 늪에서 건져 올린 이 학문으로 하이패밀리는 ‘언어와 체험’이라는 두 날개를 달게 되었다.

정리=박용미 기자 m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