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고 싶었던 우리 모두의 청춘에게… ‘우리들의 교복시절’

입력 2025-07-14 01:02
영화 ‘우리들의 교복시절’ 스틸사진. 1990년대 후반 대만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국내 관객들도 자신의 10대 시절을 떠올리며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정서를 다룬다. 스튜디오 산타클로스엔터테인먼트, 에무필름즈 제공

지역 최고 명문인 제일여고 주간반 입시에 떨어진 아이(천옌페이)는 엄마의 강요로 야간반에 입학한다. 꿈꾸던 학교지만 기쁘지 않다. 성적이 우수한 주간반 학생들과 다른 색깔의 명찰이 못내 부끄럽다. 스스로가 ‘짝퉁’처럼 느껴질 뿐이다.

주간반과 야간반이 책상을 공유하다 보니 학생들 사이에선 자연스럽게 ‘책상 짝꿍’이 생긴다. 아이는 서랍 속 편지를 주고받으며 주간반 우등생 민(샹제루)과 절친이 된다. 민의 제안으로 서로 여벌 교복을 바꿔 입고 수업을 ‘땡땡이’ 치기도 한다. 왠지 불편했던 노란 명찰의 주간반 교복이 점차 편안해진다.


푸릇한 우정을 나누던 아이와 민은 운명의 장난처럼 인근 명문 제일고의 ‘인기남’ 루커(치우이타이)를 동시에 좋아하게 된다. 아이는 민에게 처음으로 비밀이 생긴다. 첫사랑에 들떴던 아이는 문득 자신이 두 사람과 다른 세계에 속해 있다는 열등감에 휩싸이고, 루커 앞에서 주간반 행세를 하고 만다.

영화 ‘우리들의 교복시절’은 1990년대 후반 대만을 배경으로 누구나 공감할 만한 보편적 정서를 다룬다. 공부하라는 엄마의 잔소리가 밉고 우정과 사랑이 세상의 전부 같던, 학창시절 어느 날이 어른거린다. 관객들은 어리고 미숙한 주인공들의 모습에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게 된다


부유한 친구들 사이에서 이질감을 느낀 아이가 동경하는 할리우드 배우 니콜 키드먼에게 “빛이 나고 싶었는데, 투명인간이 된 느낌이에요. 나는 내 인생에서도 늘 조연이에요”라고 팬레터를 쓴다. 민에게는 이런 편지를 쓴다. “네 세상을 경험하게 해줘서 고마워. 난 갈 수 없는 곳 같아.” 대학입시에 목매는 풍토, 어릴 때부터 사회계층을 구분하고 차별하는 모습은 한국과도 닮아 있다.

영화는 갈등하고 화해하며 세차게 흔들리는 10대의 감성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2011), ‘나의 소녀시대’(2016), ‘여름날 우리’(2021) 등 특유의 청량감으로 국내서도 큰 인기를 끈 대만 청춘 영화의 계보를 잇는다. 줄 이어폰, 비디오 가게, 필름 카메라 등 아날로그 소품은 아련한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영화 ‘침묵의 숲’(2020)으로 금마장 신인상을 거머쥔 천옌페이, ‘숨통을 조이는 사랑’(2024)으로 타이베이영화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샹제루, 왕다루·쉬광한의 뒤를 잇는 차세대 스타 치우이타이 등 배우들은 그 자체로 싱그러움을 발산한다. 연출을 맡은 촹칭션 감독은 “자기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생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영화는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제21회 홍콩아시안필름페스티벌, 제61회 금마장 등에 초청됐다. 국내에선 지난 11일 개봉했는데 상영관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이대로 묻히기엔 아까운 작품이다. 러닝타임 109분, 전체 관람가.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