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하는 이유? ‘행복’이죠… 최종 목표는 명예의 전당 입성”

입력 2025-07-14 02:19
박혜준이 지난 3일 인천 베어즈베스트 청라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제15회 롯데오픈’ 1라운드 14번 홀에서 세컨드샷을 하고 있다. KLPGA 제공

한국 여자 골프에 떠오르는 신예가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박혜준(22·두산건설 위브)이 KLPGA 투어 롯데오픈에서 투어 데뷔 4년 만에 첫 우승을 차지하며 ‘미완의 대기’에서 ‘완성형 선수’로 거듭났다.

지난 6일 인천 서구 청라 베어즈베스트GC에서 열린 롯데오픈 최종 라운드에서 박혜준은 17언더파 271타를 기록하며 생애 첫 정규투어 우승을 차지했다. 투어 데뷔 4년 차, 73번째 출전에서 거둔 값진 성과다.

이번 우승 전까지 박혜준에겐 ‘미완의 대기’라는 달갑지 않은 수식어가 따라 다녔다. 박혜준은 아마추어 시절부터 장타와 정확한 아이언 샷으로 두각을 나타내며 기대를 모았던 터였다. 특히 호주 유학 시절, 36개 대회에 출전해 32차례 톱10에 들었고, 그중 10차례 우승을 차지하며 일찌감치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투어 데뷔 이후 승운이 따르지 않았다. 지난해 두 차례 준우승을 거두는 등 몇 차례 우승 기회가 있었지만, 결정적 순간마다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두산건설 위브 챔피언십에서는 황유민(22·롯데)에게 1타 차를 기록해 준우승, 삼다수 마스터스에서는 윤이나(22·솔레어)에 2타 뒤져 공동 2위에 머물렀다.

당시 심경을 묻자 박혜준은 “비록 우승은 못 했지만 최선을 다했기에 결코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실패를 외려 스스로 다잡는 계기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는 “당시 실패 경험들이 이번 롯데오픈 우승의 가장 큰 원동력인 인내심을 키워 주는 자양분이 됐다”고 했다.

박혜준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활동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 골프채를 잡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빠 손에 이끌려 남태평양 피지로 골프 유학을 떠났다. 하지만 실력을 테스트할 만한 대회가 많지 않았다. 반년 만에 정리하고 호주 골드코스트로 이주를 했다.

호주 유학 생활 초반은 순탄치 않았다.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데다 골프 실력도 검증되지 않은 그를 받아주는 학교가 없었기 때문이다. 입학 후에는 골프로 자신의 존재감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박혜준은 “호주 골프 유학으로 골프가 많이 성장했다”며 “그때 ‘골프를 잘하니까 친구들이 인정을 해주는구나, 지금보다 더 잘 지내려면 영어도 더 열심히 해야겠구나’라고 마음먹고 엄청 열심히 했다”고 돌아봤다. 호주 대회에서 꾸준히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LPGA투어 진출이 더 가까이 다가오는 듯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돌발 변수가 생겼다.

울며 겨자 먹기로 LPGA투어 진출 뜻을 접고 귀국했다. KLPGA 3부인 점프 투어 시드전 예선부터 시작해 1부 투어 출전권이 걸린 시드전 본선을 통과하기까지 6개월밖에 안 걸렸다. 2022시즌 대망의 KLPGA투어에 데뷔했다. 그야말로 속전속결이었다. 그에게 거는 기대도 점점 커졌다.

박혜준은 “예상보다 정규투어에 빠르게 진출해서 나 자신도 놀랐다”며 “그 후 성적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선수들도 잘 모르고, 문화도 낯설어 투어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2부인 드림 투어에서 많은 경험을 쌓으면서 자연스레 극복할 수 있었다”고 했다.

지난 3년여의 KLPGA투어는 기대 이하였다. 올해 들어 꾸준히 중위권에서 경기했으나 ‘톱10’ 입상은 한 차례도 없었다. 박혜준은 “올해 페이스가 점점 떨어졌다. 주변에서도 부정적인 생각이 많아졌다고 했다. 프로님도 자신 있게 플레이하라고 조언했다”고 말했다. 6월 29일 끝난 맥콜·모나 용평 오픈에서 공동 7위에 입상한 것을 반등의 기회로 삼았다.

생애 첫 승 과정도 쉽지 않았다. 5타 차로 여유가 있었으나 최종 라운드 후반, 노승희가 1타 차까지 쫓아오는 긴박한 상황이 펼쳐졌다.

박혜준은 마지막 18번 홀에서 짧은 버디 퍼트를 성공시키며 승리를 확정했다. 박혜준은 “(노승희의) 이글 장면을 보고도 타수 차가 있었고 내 버디 퍼트가 아주 짧아 크게 긴장하지 않았다. ‘수만 번 쳐 본 거리니까 편하게 치자’는 생각뿐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신동빈(왼쪽) 롯데그룹 회장은 지난 6일 대회를 찾아 우승한 박혜준에게 상금을 전달했다. KLPGA 제공

그는 이번 우승을 통해서도 배운 점이 있다고 했다. 박혜준은 “3라운드 때 샷감이 워낙 좋아 ‘샷을 믿고 기다리겠다’고 했는데, 막상 최종 라운드에서는 3라운드 때처럼 샷이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았다”며 “샷만 믿고 플레이를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고 앞으로 퍼트 연습을 더 많이 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을 갖게 됐다”고 했다.

샷감이 좋을 때는 아이언샷이 핀을 향해 쏙쏙 꽂히지만 그렇지 않을 땐 핀과 거리가 멀어져 긴 퍼트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그에 대비해 앞으로 퍼팅 능력을 더 키우겠다는 것이다.

우승 후에도 그는 차분하게 소감을 전했다. 박혜준은 “바라던 우승이라 매우 기쁘고 행복했다”며 “무남독녀 외동딸 뒷바라지에 고생하신 부모님께 영광을 돌리고 싶다. 아울러 많은 응원과 지지를 보내준 팬들에게도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박혜준이 우승을 차지한 뒤 동료들의 물세례를 받고 있는 모습. KLPGA 제공

박혜준이 골프를 하는 이유는 스스로 행복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걸 철칙으로 삼고 있다.

그는 “내가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으면 부모님은 언제라도 골프를 그만둬도 괜찮다고 하셨다”며 “다행히 학창 시절을 해외에서 보낸 덕에 국내 또래 선수들처럼 치열한 경쟁을 하지 않았다. 그런 점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골프를 계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이번 우승으로 박혜준은 어릴 적 꿈꿨던 LPGA투어 무대를 밟을 기회를 얻었다. 오는 10월에 하와이에서 열리는 LPGA투어 롯데 챔피언십에 출전 표를 상여금으로 획득했기 때문이다.


그는 “당장 LPGA투어에 갈 생각은 없다. 하지만 도전할 기회가 생겼으니 이번엔 경험 삼아 출전할 생각이다”고 했다. 그러면서 “당분간은 KLPGA투어에서 많은 승수를 쌓고 이름을 알리는데 주력할 생각이다. LPGA투어 진출은 그다음 스텝이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박혜준의 골프 선수로서 최종 목표는 ‘명예의 전당 입성’이다. 이제 첫 우승을 거둔 그에겐 특유의 자신감과 실력을 최대치로 끌어내는 긍정 심리라는 무기가 있다. 첫 승을 계기로 도약을 꿈꾸는 박혜준이 이를 앞세워 어떤 행보를 보여줄지 많은 이들의 시선이 모이고 있다.

정대균 골프선임기자 golf56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