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년 만의 무더위라는 기사를 봤다. 대낮에 길을 걸으면 모두들 웬간하면 양산을 쓰고 다닌다. 해질녘이면 온갖 강아지들이 쏟아져나와 산책을 한다. 목줄을 잡고 있는 견주는 슬리퍼를 슬며시 벗어 아스팔트 바닥에 자신의 맨발을 가져다 댄다. 그러곤 옆에 선 사람에게 이 정도면 괜찮겠지 한다. 아스팔트 바닥이 너무 뜨거워 개의 발바닥을 걱정하는 듯하다. 긴 혀를 빼문 강아지가 그늘 아래에 앉는다. 나도 그늘 아래에 앉아 있다가 강아지와 눈이 마주친다. 둘러보니 그늘마다 한두 명씩 들어앉아 쉬고 있다.
폭염의 나날이다. 어제는 유료 주차장에서 요금을 정산하기 위해 주차장 입구의 자그마한 컨테이너 앞에 잠시 서 있었다. 관리인은 컨테이너 안에서 얼굴이 벌개진 채 목에 두른 수건으로 연신 흐르는 땀을 닦고 있었다. 자그마한 벽걸이 선풍기 하나로 그 안의 열기는 어림도 없어 보였다. 오늘은 카센터에 엔진을 점검하러 들렀다가 바깥에서 일하는 정비사들의 머리카락이 소낙비라도 맞은 듯이 흠뻑 젖어 있는 모습을 봤다. 뉴스는 가뭄이 든 논밭과 농부의 걱정을 보도하고 있다. 나는 가방에 손수건을 2개씩 넣고 다닌다. 흐르는 땀을 닦기에 하나로는 모자란 나날이다.
이번 주부터는 비 소식이 있다. 비 소식이 반갑다가도 국지성 호우와 태풍 가능성도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고 한다. 폭염특보를 알리는 재난문자에도 무덤덤해지는 여름. 이쯤 되면 재난에 대한 기준도 바뀔 때가 지난 것 같다. 반갑게 내려줄 이번 주의 비는 재난문자가 되지 않는 선에서 은은하게 흠뻑 와주면 좋으련만 하며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쉰다. 바깥은 열기가 과하고 안은 냉방이 과해 어디를 가든 가방 속에 넣어 다니는 얇은 카디건 이야기를 건네는 나에게 에어컨을 갖춘 데가 그리 많지 않아 무더위에 적응하려고 애쓰고 있다는 독일에 사는 친구의 말을 떠올려본다. 이렇게까지 호사를 누리지 않아도 좋을 텐데 하면서.
김소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