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자신을 너무 심각하게 대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누리라

입력 2025-07-14 03:08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하려 애쓰며 살아갑니다. 직업 외모 학벌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것들뿐 아니라 성취 명예 평판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통해서도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확신을 얻으려 합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달랐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도권을 의심하던 고린도 교회를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이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고후 11:22~23)

바울에게는 자기를 증명할 만한 스펙이 넘쳐났습니다. 순수 혈통, 가말리엘 문하라는 당대 최고 학벌, 신비한 체험, 예수님을 위한 고난의 흔적들, 거기다 히브리어 구사 능력까지 있었습니다. 당시 많은 유대인들이 일상에서는 아람어를, 학문이나 성경 해석은 헬라어를 사용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정통 히브리어로 성경을 읽고 해석할 줄 아는 당대 보기 드문 엘리트였습니다. 이쯤이면 고린도 교회도 바울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그는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꺼냅니다.

“다마스커스에 있었을 때에는 아레다 왕의 총독이 나를 체포하려고 성문들을 지키고 있었는데 나는 광주리를 타고 성벽 창문 아래로 내려와 총독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온 적도 있었습니다.”(고후 11:32~33, 쉬운성경) 다시 말하면 이렇습니다. ‘나 그렇게 대단한 사람 아닙니다. 주님을 위해 죽는 대신 목숨이 아까워 광주리 타고 도망쳤던 사람입니다. 그게 내가 사도라는 증거입니다.’

바울은 왜 이렇게 한 걸까요. 그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때는 세상 앞에 내세울 게 많던 사람이었지만 복음 앞에 서보니 모든 것이 의미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끝까지 사랑하시고 쓰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주님의 큰 은혜 앞에서 더 이상 자신을 포장하거나 과장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복음이 이미 그가 누구인지, 얼마나 사랑받는 존재인지를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를 너무 심각하게 여기지 않아도 괜찮았던 이유,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삶을 붙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국 문학사상 가장 독창적인 사상가 중 하나인 GK 체스터턴은 몸무게가 135㎏이 넘는 거구였습니다. 어느 날 마차를 타려다 몸이 끼자 마부가 “옆으로 타보라”고 조언했습니다. 그때 그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이 몸은 앞이나 옆이나 다를 바 없다오.” 자기를 너무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유쾌함이고 여유입니다. 자기 자신에 과하게 몰입한 사람은 절대 그렇게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반드시 완벽할 필요가 없습니다. 잘 해내야만 사랑받는 존재도 아닙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자신을 너무 심각하게 여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합니다. 그 자유가 우리를 더 진실하고 담백하게 살아가게 합니다. 오늘 하루 그 복음의 여유를 품고 조금 가볍게 걸어가 보면 어떨까요. 예수 안에서 말입니다.

정통령 더세움교회 목사

◇더세움교회는 2011년 경북 김천에 개척된 이후 젊고 역동적인 교회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을 소중히 여기며 한 사람에 집중하는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이 쓰시기에 편한 교회로 서기를 소망하며 어린아이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온 세대가 서로를 동역자로 여기며 지역과 열방을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