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자산 시장이 전인미답의 영역에 발을 들였다. 한국 증시는 사상 처음으로 시가총액 3000조원을 돌파했다. 뉴욕증시도 시총 4조 달러(약 5500조원)를 돌파한 엔비디아를 필두로 역사상 고점을 갈아 치웠다. 암호화폐 비트코인도 11만2000달러를 돌파하면서 역사상 고점을 다시 썼다.
트럼프발(發) 관세 정책에 대한 우려가 무뎌진 덕분이다. 관세 유예 조치가 연장되면서 위험자산 선호 심리가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홍춘욱 프리즘투자자문 대표는 “자산시장에서 이른바 ‘타코(TACO·트럼프는 항상 물러선다)’ 랠리가 펼쳐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국내 증시의 상승세는 가파르다. 6·3 대통령 선거 이후 최근 한 달여 동안 17.9% 급등했다. 주주 가치 훼손을 막을 수 있는 상법 개정안이 지난 3일 국회를 통과됐고 자사주 소각 의무 등 후속 입법이 진행되고 있는 점이 외국인 투자자의 복귀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외국계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는 “새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해 강한 추진력을 보여 당분간 추가 자금 유입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상반기 부진한 성적을 냈던 뉴욕증시는 하반기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지난 8일 예상대로 상호관세가 부과됐다면 시장 분위기는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라며 “안도감에 따른 상승”이라고 평가했다.
전날 뉴욕증시를 이끈 것은 인공지능(AI) 칩 시장을 장악한 엔비디아다. 9일 엔비디아는 전 세계 상장사 중 처음으로 장중 시가총액 4조 달러(약 5500조원)를 돌파했다. 이 영향에 엔비디아에 고대역폭메모리(HBM)를 공급하는 SK하이닉스도 전 거래일보다 5.69% 오른 29만7000원에 마감했다.
엔비디아 등 기술주 상승에 비트코인도 따라 올랐다. 이날 오전 4시 55분 코인베이스에서 비트코인 가격은 11만2055달러(약 1억5372만원)에 거래되며 약 한 달 반 만에 사상 최고가를 갈아 치웠다.
내년 11월 예정된 미국 중간선거가 다가올수록 관세에 대한 우려는 점차 약화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공화당이 민주당에 의석수를 일부 내주면서 관세 정책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기대감에서다.
홍 대표는 “트럼프의 관세 압박이 중간선거 전까지인 1년 6개월 동안 한시적인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향후 상호관세가 적용돼 여러 경제 지표에 반영되기 시작하면 상승 추세를 둔화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광수 기자 g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