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극장 연극의 부활… 스타 마케팅과 신예 발탁의 엇갈린 전략

입력 2025-07-12 00:03
최근 국내 공연계의 뚜렷한 흐름 중 하나는 대극장 연극의 잦은 제작이다. 이런 흐름의 배경에는 영화와 드라마 제작 위축 여파로 스타 배우들이 무대에 눈을 돌리는 현상이 있다. 제작사들은 스타 캐스팅을 앞세워 대극장 연극을 1달 이상 장기 공연하며 관객을 불러모으고 있다. 이런 대극장 연극이 연극의 대중화에 기여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올여름엔 2편의 대극장 연극이 관객을 만나고 있다. 지난 3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1221석)에서 개막한 ‘렛미인’과 지난 5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1004석) 무대에 오른 ‘셰익스피어 인 러브’다. 이번이 재연인 두 작품은 각각 8월 16일과 9월 14일까지 공연된다.

연극 ‘렛미인’은 뱀파이어 소녀 일라이와 왕따 당하는 소년 오스카의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 사진은 극중 일라이와 오스카가 만나 친구가 되는 장면. 신시컴퍼니 제공

‘나를 들여보내 줘’라는 뜻의 ‘렛미인’은 생존을 위해 피를 마셔야 하는 뱀파이어 소녀 일라이와 학교 폭력과 부모의 무관심에 시달리는 소년 오스카의 이야기를 담았다. 현대인의 고독, 결핍, 상처를 담은 작품은 스웨덴 작가 욘 린드크비스트의 소설이 원작이다. 소설은 스웨덴과 미국에서 영화로도 제작돼 호평받았다.

연극 ‘렛미인’의 존 티파니 연출가. 신시컴퍼니 제공

연극 ‘렛미인’은 2013년 스코틀랜드 국립극단에서 작가 잭 쏜의 대본과 존 티파니의 연출로 초연됐다. 두 창작자는 세계적으로 히트한 뮤지컬 ‘원스’와 연극 ‘해리 포터와 저주받은 아이’에서도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영국에서 손꼽히는 두 창작자가 손잡은 ‘렛미인’은 높은 작품성과 완성도로 호평받았다.

신시컴퍼니가 2016년 국내 초연한 ‘렛미인’은 한국 연극 최초로 레플리카 프로덕션(원작 프로덕션의 디자인을 그대로 구현하는 형태)으로 무대에 올랐다. 영화 ‘검은 사제들’로 주목받은 배우 박소담이 출연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20년 재연이 예정됐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취소됐고, 올해 9년 만에 관객을 만나고 있다. 일라이 역에 권슬아 백승연, 오스카 역에 안승균 천우진이 캐스팅됐다.

‘사랑에 빠진 셰익스피어’라는 뜻의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아카데미상을 받은 동명 영화를 무대화했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셰익스피어와 귀족의 딸 비올라의 안타까운 사랑에서 비롯됐다는 상상에서 출발한 영화는 미국 작가 마크 노먼과 영국 작가 톰 스토파드가 공동으로 시나리오를 썼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지배하던 16세기 영국의 역사와 극장 문화를 잘 녹여냈다. 연극은 영화 ‘빌리 엘리어트’ ‘워 호스’ 등을 썼던 작가 리 홀이 각색한 대본으로 2014년 데클란 도넬란 연출로 런던에서 초연돼 인기를 끌었다.

연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아카데미상을 받은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했다. 젊은 시절 셰익스피어와 귀족의 딸 비올라의 안타까운 사랑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를 담았다. 쇼노트 제공

제작사 쇼노트가 2023년 국내 초연한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스몰 라이선스(대본과 음악만 계약하고 연출은 현지화하는 방식)로 공연됐다. 국내 뮤지컬 분야에서 손꼽히는 연출가 김동연이 이끈 프로덕션은 화려한 스타 캐스팅도 화제였지만 정교한 무대세트와 의상 등 볼거리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2년 만에 돌아온 재연은 초연 당시 안무를 맡았던 송희진이 공동연출을 맡았다. 주인공 셰익스피어 역에는 이규형 손우현 이상이 옹성우, 비올라 역에는 이주영 박주현 김향기가 캐스팅됐다.

두 연극은 개막 초기이긴 하지만 티켓 마케팅만 놓고 볼 때 ‘셰익스피어 인 러브’가 ‘렛미인’보다 상당히 우위에 있다. ‘셰익스피어 인 러브’가 TV나 영화 등을 통해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배우들을 주역으로 내세운 것과 달리 ‘렛미인’은 연극 무대에서 주로 활동하거나 데뷔한 지 얼마 안 된 신인 배우들을 캐스팅했기 때문이다.

지난 9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열린 연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 기자간담회에서 주역으로 출연하는 배우 이규형(왼쪽부터), 이주영, 손우현, 박주현, 이상이, 김향기, 옹성우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시컴퍼니의 최승희 홍보본부장은 “제작사 입장에서 대극장 연극의 흥행 공식인 스타 캐스팅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렛미인’의 남자 주인공은 왕따 당하는 10대 소년으로 속옷만 입고 나오는 장면도 여럿 있어서 유명 배우들이 선호하지 않는 캐릭터다. 또 뱀파이어인 여주인공 역시 고난도 액션 연습이 요구되는 탓에 인기 있는 배우들은 선뜻 나서지 않는다”고 캐스팅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어 “레플리카 프로덕션은 해외 스태프가 오디션을 통해 캐릭터에 맞는 배우를 선발한다. 수백 명의 지원자 가운데 지금의 배우들이 뽑힌 만큼 연기력을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반면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초연 당시부터 연극의 대중성과 오락성의 부활을 강조하고 있는 것에 비해 높은 티켓 가격이 다소 부담스럽다. 2023년 초연 당시 티켓 가격 최고가가 11만원으로 책정되며 국내 연극계에 티켓 가격 10만원 시대를 열었다. 올해 재연에선 최고가 12만원으로 책정됐다.

쇼노트의 송한샘 부사장은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초연부터 과감하게 투자했다. 재연 역시 물가 인상 등을 고려할 때 제작비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 대중성을 추구한다고 해서 티켓이 저가여야 한다는 논리는 맞지 않는다. 대중적인 K팝 콘서트의 티켓 가격도 비싸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공연 기간 타임세일로 특별 할인 티켓을 내놓을 예정이며 배움의 측면에서 대학 연극과를 대상으로 별도의 할인 판매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