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AI와 비트박스

입력 2025-07-12 00:38

‘윙’이라는 사람의 비트박스 영상을 보게 된 건 지난 3월이었다. 그가 새로 발표한 ‘도파민’ 음원 뮤직비디오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소셜미디어 곳곳에 관련 영상이 퍼져나가고 있던 차였다.

비트박스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비트박스는 북치기 박치기만 기억하면 된다’는 20여년 전 유행어나 떠올리던 나에게 ‘도파민’ 영상은 충격 그 자체였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드럼이나 베이스 소리는 물론 전자음까지 완벽하게 복제한 그의 실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도 사람이, 그것도 한 명의 사람이 이런 복합적인 소리를 낸다는 걸 도저히 믿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놀란 건 비트박스 퍼포먼스가 작곡의 영역으로 확장됐다는 점이었다. 악기 소리를 모방하고, 기존 음악을 따라하는 것을 넘어 비트박서들은 이제 자신만의 소리로 새로운 음악을 창조하고 있었다. 비록 그 음악을 대중이 따라부르기는 쉽지 않지만 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윙은 유명 토크쇼에도 출연하고 음악방송 무대(아무런 반주 없이 비트박스 소리로만 채워진 무대였다)에도 섰다. 2월에 게시된 ‘도파민’ 뮤직비디오는 5개월도 되지 않아 2900만 조회수를 돌파했고 지금도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

AI의 발달로 기계의 작품과 인간의 작품을 구분하기도 어려운 시대에 ‘기계음을 따라하는 인간’에게 열광하는 건 무슨 심리일까. 윙의 비트박스 영상을 보다 보면 종종 이런 의문이 떠올랐다. 고백하자면 나는 윙의 무대에 감탄을 넘어 감동을 느끼곤 했는데, 그 감정의 출처를 처음에는 알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윙이 유명세를 탄 시기는 챗GPT를 이용해 개인 사진을 지브리(일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만화 일러스트로 바꾸는 이미지 생성 놀이가 유행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챗GPT에 사진을 업로드하고 ‘지브리풍 일러스트로 바꿔줘’라고 명령만 내리면 짧게는 수십초, 길게는 몇 분 만에 지브리 화풍을 따라한 결과물이 나온다. 큰돈을 들여 전문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의뢰하지 않아도 애니메이션계의 거장이 그려준 것 같은 그럴싸한 이미지를 무한정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지브리풍 이미지는 대표 사례일 뿐 이제 AI를 이용하면 그림도 글도 영상도 음악도 ‘○○작가 스타일’이나 ‘○○작품 분위기’를 담아 손쉽게 찍어낼 수 있는 시대다. 챗GPT를 운영하는 오픈AI 측은 지브리풍 이미지가 유행하면서 한 시간 만에 유료 이용자 100만명이 늘어났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렇게 AI는 사람의 창작물을 학습해 모방하기 바쁜데 누군가는 기계보다 더 기계 같은 소리를 내기 위해 연구와 연습을 거듭한다. 온전히 자신의 몸에서 나오는 소리를 섬세하게 조합해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음악 세계를 구축한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좌절과 희열이 있었을지 감히 상상하기 어렵다. AI 시대와는 전혀 맞지 않는, 가장 ‘인간적인’ 예술가를 지켜보며 이내 깨달았다. AI의 결과물에는 창작자가 겪는 그 당연한 ‘과정’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대중이 윙에게 박수를 보내는 이유가 단지 ‘사람이 흉내내기 어려운 기계 같은 소리를 내어서’일까. 아니라고 본다. 그토록 훌륭한 결과물을 내놓기 위해 쌓아온 노력, 그 성실한 시간 속에서 이루어낸 성장들이 2분여간의 짧은 퍼포먼스 안에 모두 녹아 있기에 수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AI에게 윙의 비트박스 소리를 학습시키면 ‘도파민 스타일 음악’은 불과 몇 분 만에, 그것도 수백 가지 버전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러나 완성도에 대한 평가는 별개로 하더라도 AI의 음악이라는 것을 알게 됐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미야자키 감독은 과거의 한 다큐멘터리에서 AI가 만든 애니메이션에 대해 “AI는 작업하는 사람의 고통을 전혀 모른다” “삶에 대한 모독”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아날로그 감성 역시 손으로 그리는 수작업 애니메이션 방식을 고집하는 장인정신으로 만들어진 지브리만의 스타일이다. 일상 곳곳에 스며든 AI 기술이 우리의 미래를 얼마나 더 최첨단으로 바꿔놓을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과정이 있기에 더 아름다운 인간의 창조물을, 인간이기에 누릴 수 있어 다행이다.


박상은 산업1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