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긴 지상파 ‘장수 예능들’… “변화 두려워 안주” 지적도

입력 2025-07-12 00:01
지상파 예능이 고령화 현상을 빚고 있다. 주요 프로그램 가운데 10년 이상 방영된 사례가 속출한다. 각 방송사는 간혹 새로운 프로그램을 내놓고도 있으나 간판격인 프로그램은 고정 시청층을 고려해 쉽사리 손대지 못하는 형국이다. 왼쪽 사진부터 15~18년간 이어져 온 MBC ‘라디오스타’, KBS 2TV ‘1박 2일’, SBS ‘런닝맨’의 방송화면. 각 방송사 제공

지상파 방송 3사 간판 예능 프로그램의 고령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방영기간이 10년 이상 된 프로그램이 다수이고 20년 가까이 된 사례도 있다. 방송사로선 고정 시청층을 보유한 검증된 콘텐츠라는 점에서 포기하기 어렵다는 입장이지만 일각에선 변화보다 안정을 택한 안일한 전략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각 방송사가 프라임 시간대인 평일·주말 저녁에 편성한 예능을 살펴보면 이런 추세가 눈에 띈다. MBC는 평일 밤 토크쇼 ‘라디오스타’를 2007년 5월부터 무려 18년째 이어가고 있다. 920여회 진행되는 동안 MC 4명에 매주 다른 게스트 4명이 출연하는 형식이 유지됐다. 2013년 3월 첫 방송 돼 관찰 예능 붐을 일으킨 ‘나 혼자 산다’는 전현무 박나래 등 고정 MC와 게스트들의 일상을 보여주는 식이다. 스타들이 가면을 쓴 채 노래 실력을 뽐내는 획기적 기획으로 주목받은 ‘복면가왕’은 2015년 4월부터 10년간 일요일 밤 시청자를 만나 왔다.

KBS도 장수 예능을 여럿 보유했다. 대표적인 건 ‘야생 버라이어티’를 표방하는 여행 예능 ‘1박 2일’이다. 2007년 8월부터 18년간 일요일 저녁 시간대에 편성됐는데, 시즌제를 채택해 2019년 12월부터는 시즌4가 방송 중이다. 시대를 풍미한 가수의 히트곡을 후배 가수들이 재해석하는 음악쇼 ‘불후의 명곡’은 2012년 4월부터, 부모가 된 연예인들의 육아를 보여주는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2013년 11월부터 각각 10년 이상씩 방송됐다.

SBS에선 ‘런닝맨’이 최장수 예능이다. 2010년 7월부터 15년간 일요일 저녁 시간대를 책임졌다. 유재석 김종국 하하 송지효 등 초창기 멤버가 유지되는 가운데 이따금 멤버 교체를 겪었다. 이 외에 스타의 어머니가 노총각 아들의 일상을 지켜보는 콘셉트로 인기를 끈 관찰 예능 ‘미운 우리 새끼’는 2016년 8월부터, 연예인 부부의 생활을 담은 ‘동상이몽 2-너는 내 운명’이 2017년 7월부터 시청자를 만났다.

게티이미지뱅크

장수 프로그램은 대체로 시청률이 정체 상태다. 게스트에 따라 1~2% 정도 소폭 등락이 있을 뿐 변화가 크지 않다. 익숙한 출연진과 고정된 형식은 새로운 시청층 유입에도 한계로 작용한다. 식상하다는 평가는 덤으로 따라온다.

방송사들은 “고정 시청층을 놓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미 유튜브나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로 상당수 이용자가 빠져나간 상황에 그나마 남은 시청층을 지켜야 한다는 절박함이 감지된다. 상대적으로 TV 이용이 많은 고령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는 공익적 측면도 있다.

외부적 이유로 폐지하기 어려운 경우도 존재한다. 해외 50여개국에 판권을 수출해 적잖은 로열티를 벌어들이는 ‘복면가왕’과 전 세계 100여개국에 방영되며 두터운 해외 팬층을 보유한 ‘런닝맨’이 그렇다.

방송사들은 일정한 포맷 안에서도 나름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MBC 관계자는 11일 “장수 프로그램을 이어가는 이유는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라며 “익숙함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움을 시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KBS 측도 “프로그램 장기화로 인한 진부함이나 느슨함을 경계하며 구성 및 출연자 등에 다양한 변화를 시도한다”고 말했다. SBS 측은 “장수 예능의 ‘올드’한 이미지가 부담으로 작용하는 건 사실이나, 트렌드에 맞는 출연자와 에피소드를 계속 발굴하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지상파 제작 여건상 어려움을 인정하면서도 관성을 탈피해 더욱 과감한 시도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정석희 대중문화평론가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내놔도 기존과 같은 인지도와 성과를 얻기 어려울 거란 두려움으로 시도를 꺼린다”며 “안일하고 안정적인 선택”이라고 비판했다. 김교석 대중문화평론가는 “TV 시청층이 고령화하는 가운데 TV 앞에 머물러 있는 분들만을 위한 방송을 계속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창출하는지 의문”이라며 “패러다임이나 새로움을 선도해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