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 친구들과 연애와 성(性)을 주제로 이야기를 하게 됐어요. 저는 그리스도인이라서 결혼 후에야 성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말했는데 친구들이 웬 조선시대 얘기냐며 야유를 하더라고요.
A : 본래 전도는 그렇게 시작되는 거야. 좋은 질문 고맙다. 일단 우리는 늘 관계를 기준으로 무언가를 한단다. 심지어 그건 ‘받는’ 것도 마찬가지지.
예를 들면 초면인 누군가 거리에서 다가와 “○○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시겠어요?” 하면 친절하게 알려줄 수 있겠지. 하지만 누군가 네게 “금반지가 있는데, 이건 제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정말 소중한 가보예요. 이걸 받아주시겠어요?”라고 말한다면 어떨까. 꺼려지고 망설여질 거야. 무슨 의도로 귀한 것을 주는지 알 수가 없으니 말이야.
만약 여자친구가 너와 약혼을 하고 “이 반지는 어머님께서 내게 결혼할 때 남편과 하라고 주신 반지인데, 이제 오빠와 결혼을 하게 되니 주려고 해”라고 말한다면 어떨까. 너무나도 소중한 건 너무나도 소중한, 오직 둘만이 소유할 수 있는 배타적인 관계에서만 가지는 것이 적절하지. 성관계도 마찬가지야.
결혼이란, 교회를 위해 자신을 다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고 전적으로 순종할 것을 다짐하는 교회의 모습을 드러내는 모형이야. 그리고 성관계는 교회와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누리는 영원한 기쁨을 조금이라도 맛보게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고.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성을 소중히 하는 이유야. 성관계가 불결하고 더럽기 때문에 금지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너무나도 소중하기 때문에 그 관계에서만 가능하지.
물론 반문도 들 거야. “우리는 결혼을 하지 않은 연인이지만 서로를 아끼고 소중히 여겨요”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겠지. 물론 연인 관계에서도 서로를 소중히 여기겠지만 사회적이나 신앙적으로 서로를 향한 철저한 헌신이 결혼식을 통해 공증된 상태가 아니야. 헤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지.
연애하는 관계일 때는 서로를 조건 없이 받아들일 수가 없어. 언젠가 헤어질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하지만 결혼은 달라. 죽는 날까지 서로 사랑하겠다고 약속한 사이이고, 따라서 이 관계에서만 조건 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고 나눌 수 있는 거지. 성관계는 너무나도 소중해서 이러한 관계 가운데서만 행복할 수 있단다.
이정규 목사(시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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