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초보들의 자문자답

입력 2025-07-11 00:32

누군가 방 청소를 하다 발견했다면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쪽지를 봤다. 정확히 언제인지 알 수 없지만 그의 엄마가 아주 오래전에 쓴 글이다. 맨 위에 제목이 적혀 있었다.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자문자답.’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스스로에게 던지는 9가지 질문이 적혀 있었다. ①나의 어린 시절을 기준으로 내 생각을 자녀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가. ②자녀의 등교시간이나 식사시간을 잔소리하는 시간으로 쓰고 있지 않은가. ③나의 잘못을 인정하기 싫어서 자녀를 핑계 삼은 적은 없는가. ④이미 저지른 잘못에 대해 자녀가 깨달았음에도 불구하고 두고두고 되풀이해 야단친 적은 없는가. ⑤자녀에게 잘 대하고 못 대하는 것이 내 기분에 의해 좌우된 적은 없는가. ⑥아이가 힘들어할 때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조용히 격려해 주는가. ⑦자녀와 가장 친한 친구는 누구인지, 자녀가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인지 알고 있는가. ⑧자녀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이 되고 싶어 하는지를 알고 있는가. ⑨자녀가 이룬 것이 아무리 사소할지라도 진심으로 기뻐하고 칭찬해 주는가.

한 글자 한 글자 정성껏 눌러쓴 흔적이 역력했다. 엄마는 글을 가슴에 새기고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수시로 마음속에서 꺼내봤을 거다.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엄마라는 역할. 하지만 그 무엇보다 막중한 임무. 아이를 대하는 어설프고 서툰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엄마가 한 건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일이었다.

살면서 마주하는 수많은 ‘처음’은 대체로 서툴 수밖에 없다. 입사하던 때를 떠올렸다. 그날 발생한 사건 한 토막을 건지기 위해 새벽까지 서울시내 경찰서를 돌아다녔다. 노크를 하고 강력계 문을 여는 순간의 두근거림은 여러 날이 지나도록 괜찮아지지 않았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지만 공치는 날이 허다했다. 회사 사무실에서도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출력을 해야 하는데 프린터 사용법을 몰라 한참을 망설였다. 전화벨이 울려서 받긴 했는데 다른 사람 전화로 돌리는 법을 몰라 그냥 끊어졌던 기억이 있다. 점심을 먹으러 나가야 하는데 타이밍을 못 잡아서 괜히 책상 정리를 한 적도 있다. 그런 날들이 있었다. 아무것도 몰라서 조심스럽고 실수라도 할까봐 긴장으로 굳어 있던 날들. 우왕좌왕할 때마다 스스로에게든, 다른 사람에게든 물어봤어야 했는데 나는 잘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여전히 그렇다. 경험해보지 못했던,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은 일들 앞에서 지금도 우왕좌왕한다. 결혼이나 가족의 사망 같은 개인적 사건뿐 아니라 사회적 이슈들, 이를테면 헐값이 된 노동의 가치, 치솟은 부동산 가격, 출산 기피, 악화하는 기후위기 앞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번 생도, 이 순간도 다 한 번뿐인 걸 알기에 잘못된 선택을 할까 더 초조해진다.

그럴 때마다 질문하기로 한다. 적어도 처음 경험하는 일들 앞에선 정답을 알고 있다는 믿음보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게 더 성숙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묻고, 망설이고, 또 다짐하는 순간들. 그 과정이 쌓여 결국 우리를 더 좋은 부모로, 더 괜찮은 동료로, 더 따뜻한 사람으로 만들어줄 거라고 믿는다.

그러고 보니 이번 정부 초대 장관 후보자들의 청문회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송곳 같은 질문에 대응하기 위한 답변거리를 찾고 있을 거다. 하지만 이제 막 중요한 임무를 부여받은 초보 공직 후보자들에게 더 필요한 건 스스로 묻고 답하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내 생각을 일방적으로 강요하고 있진 않은지, 내 잘못을 인정하기 싫어서 핑계 대는 건 아닌지, 중요한 결정을 기분에 따라 하진 않았는지, 국민이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알고 있는지. 좋은 공직자가 되기 위한 자문자답이 필요하다.

이용상 산업2부 차장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