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시진핑 실각설

입력 2025-07-11 00:40 수정 2025-07-11 06:36

1990년 새해 초 세계 증시는 ‘고르바초프 증후군’을 앓았다. 새해 개장 첫 날인 1월 5일 일본 닛케이지수 폭락(-438.1포인트)이 시작이었다. 1월 10일, 31일에도 전 세계 주가가 흔들리고 달러화가 급등하는 등 시장이 요동쳤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실각설 때문이다. 고르바초프가 외부 인사와의 면담을 취소했을 뿐인데 실각설로 연결됐다. 개혁·개방 정책을 펼치던 고르바초프가 물러나면 세계 평화무드가 깨질 것이란 우려가 반영된 것이다.

지도자 실각설은 통상 취재 자유가 없고 정보가 차단된 사회주의 등 권위주의 국가에서 자주 나타난다. 권력 주변의 사소한 움직임이 각종 풍문을 양산해서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94년 7월 아버지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추도대회를 제외한 중요행사에 약 3개월간 두문불출하자 실각설이나 연금설이 난무했다.

중국 덩샤오핑 전 주석만큼 실각설이 파다했던 이는 없다. 권력 2인자 시절이던 66년과 76년 각각 문화혁명, 천안문 사건으로 숙청되는 등 실제 실각 경력이 있던 터여서 작은 일에도 국제 뉴스의 중심에 섰다. 79년에는 당 대회 연설이 없었다는 이유로, 82년에는 베이징을 한 달간 비웠다는 이유로 실각설이 나돌았다. 하지만 오뚝이란 별칭에 맞게 매번 다시 일어서 90년대까지 최고 권력을 장악했다.

시진핑 주석의 실각설이 요새 화제다. 군대 내 측근 인사들이 줄줄이 축출·낙마되는 상황이 이상기류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당 원로가 정책에 개입할 수 있는 ‘정책결정 의사협조기구’가 최근 설립되자 실각설을 부채질했다. 이를 다룬 외신보도도 부쩍 늘었다. 이에 중국 관영언론들이 시 주석의 건재함을 알리는 시찰, 회의 진행 사진을 싣느라 분주하다. 다이빙 주한중국대사도 지난 9일 ‘시진핑 실각설’을 겨냥한 듯 일부 한국 언론이 왜곡된 사실을 보도하고 있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사회주의 체제의 은밀한 속살을 누가 알겠냐만 시 주석 거취는 우리나라의 경제·외교·안보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에 관심이 안 갈 수 없다.

고세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