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사역자로서 강의 상담 집필 방송 등 활발하게 활동했다. 2007년 가을, 당시 나이 마흔일곱에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이제는 파도타기를 즐길 법도 한데 나는 또다시 깊은 물 속으로 휩쓸려 들어갔다. 갱년기가 찾아온 것이다.
처음에는 건망증이었다. 단어 조합이 뒤엉켰다. 비슷한 단어인데 한두 글자가 틀렸다. 키친타올은 ‘치킨타올’로 바나바는 ‘바나나’로 양촌리는 ‘양수리’로 바뀌었다. 건망증은 점점 심해졌다. 단어가 기억나지 않았다. ‘이것’ ‘저것’ ‘그때’ ‘그 사람’ 같은 대명사를 자주 썼다. 휴대전화를 잃어버리는 건 기본이었다. 하도 자주 잃어버리니 직원들이 폰 찾기 기능이 있는 스마트워치를 사줬다. 문제는 스마트워치까지 잃어버리는 것이었다.
감정은 예고 없이 요동쳤다. 불쑥불쑥 화가 치밀었다. 예고도 없고 이유도 없었다. 어느 날 부엌에서 칼질하고 있는데 남편이 “여보” 하고 불렀다. 나는 칼을 도마에 ‘탁’ 내리치면서 소리를 질렀다. “왜!” 놀란 남편은 “아무것도 아냐…” 하며 자리를 피했다. 불평이 늘어났고 자기주장은 강해졌다. 부부 세미나 진행 중에 남편과 다투기까지 했다. 남편은 이런 나를 ‘거라사의 광인’이라 불렀다.
얼굴은 화끈거리며 벌겋게 달아오르기 일쑤였고 외출조차 어려울 정도로 피부가 뒤집혔다. 잠도 오질 않았다. 불면증에 시달렸고 결국 우울증에 걸렸다. 무기력했고 공허했다. 그토록 열정을 쏟던 사역조차 싫어졌다. 남편과 함께 진행해야 하는 프로그램에서 내 차례에도 멍하니 앉아있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날마다 불행한 얼굴로 죽음을 생각했다. 청년 시절 하나님 없이 살 때 생각했던 죽음과는 달랐다. 내 안에 나를 망치려고 작정한 괴물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정체를 몰랐다. 기도해도 소용이 없었고 기도조차 안 나왔다.
어느 날 지인 사모가 찾아왔다. 죽고 싶다는 말을 했다. 한 시간 가까이 자신의 고통을 호소했다. 놀랍게도 내가 겪고 있는 증상과 똑같았다. 비로소 괴물의 정체가 드러났다. 다름 아닌 호르몬이었다. 몸의 주인이 바뀌고 있었다.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은 급감하고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이 급증했다. 불규칙하던 생리도 멈추면서 내 몸은 더 이상 생명을 잉태할 수 없게 됐다. 여자로서도 끝난 듯했다. 드디어 모든 수수께끼가 풀렸다. 호르몬 변화로 인해 바뀐 몸 시스템에 적응하느라 겪는 몸부림이었다.
문득 의문이 생겼다. ‘호르몬 변화는 몸에서 일어났는데 왜 마음과 영혼까지 흔들리는 걸까.’ 이 질문이 훗날 하이패밀리 사역에 얼마나 큰 전환점이 될지 그땐 몰랐다. 다만 몸과 마음, 영혼이 따로가 아니라는 깨달음이 어렴풋이 들었을 뿐이다. 사모는 떠나기 전 툭 한마디를 던졌다. “며칠 전에 춤 관련 세미나에 참가했는데 도움이 많이 됐어요. 사모님도 한번 가보세요.” 춤이라는 단어에 눈이 번쩍 뜨였다. 무작정 달려갔다.
세미나가 끝났을 때 내 가슴은 힘차게 뛰었다. 내 안에 깊이 잠들어 있던 춤의 끼와 열정이 깨어났다. 행복했다. 나는 평생 가야 할 내 길을 만났음을 직감했다. 바로 신체심리학자의 길이었다.
정리=박용미 기자 m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