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향숙 (10) 고통 겪는 단 한 명의 사모라도 치유할 수 있다면…

입력 2025-07-11 03:02
김향숙(원 안) 대표가 지난해 5월 경기도 양평 하이패밀리에서 열린 74차 한국 러빙유에 참가한 사모와 여성 성도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 김 대표 제공

2006년 12월 사모 20명과 스태프 5명이 경기도 양평 하이패밀리에 모였다. 사모 치유회복세미나 ‘러빙유(Loving You)’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귀국 후 개발한 첫 콘텐츠였다. 사모는 역경의 대명사다. 소위 ‘연고대(연단과 고난의 대학)’ 수석 입학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 날 제자 사모가 머리를 빡빡 밀고 나타났다. 암에 걸린 줄 알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사연을 들어보니 성도들 때문이었다. 긴 머리를 하고 갔더니 한 권사가 말했다. “아가씬 줄 아나 봐. 사모가 어려 보여서 뭐 하려고.” 그래서 나이 들어 보이려고 파마를 했더니 다른 집사가 비아냥댔다. “50대 아줌마처럼 촌스럽게 그게 뭐예요.” 신경이 쓰여 다시 단발로 폈더니 이번에는 또 다른 권사가 쏘아붙였다. “젊어 보이려는 것도 유분수지 고등학생인 줄 아나 봐”. 결국 짧게 잘랐더니 이번에는 “사모가 요즈음 무슨 일이 있나 봐”라며 수군댔다. 화가 난 사모는 머리를 아예 밀어버렸다.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녀는 끝내 눈물을 뚝뚝 흘렸다.

충격이었다. 21세기에도 이렇게 살아가는 여성들이 있다니. 인권 사각지대에 방치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교역자도 권사도 그렇다고 평신도도 아닌 이 모호한 위치가 일방적인 역할 기대를 낳은 것이다. 사모는 한 명인데 그를 향한 역할 기대는 성도 수만큼이다. 애초부터 채워줄 수 없는 기대임에도 채워주려고 애쓰다 병이 난다. 이른바 ‘사모병’, 괜찮은 척하는 병이다. 아파도 괜찮은 척, 화가 나도 괜찮은 척, 슬퍼도 괜찮은 척….

나도 사모다. 나는 사모병을 겪지 않을 줄 알았다. 2017년 9월 남편이 경기도 양평에 청란교회를 개척했다. 처음으로 담임 사모가 됐다. ‘사모의 심장’이라는 책을 쓸 만큼 사모들의 아픔을 잘 아는 남편은 일부러 나에게 가정사역원장이라는 공식 직함을 줬다. 그런데도 성도들은 나를 모함하기도 하고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며 비난하기도 했다. 머리로만 알던 사모의 고통이 온 마음으로 다가왔다. 통곡하며 울었다.

나와 같은 고통을 겪는 단 한 명의 사모라도 살릴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해야만 했다. 이 거룩한 부담은 치유사역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이었다. 선택이 아니라 순종의 문제였다.

내년이면 한국 러빙유가 20주년을 맞는다.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수많은 사모가 살아났다. 하나님이 써 내려간 회복 스토리는 기적 그 자체였다. “죽고 싶은 마음으로 왔다가 살고 싶은 마음으로 돌아갑니다.” “사모라는 감옥 안에 스스로를 가두었던 내가 이제는 사모라는 행복한 세상으로 다시 날아갑니다.”

내년엔 미국 동부 러빙유가 10주년을 맞고 보스턴 러빙유가 새롭게 출발한다. 러빙유에서 회복한 후 강력한 후원자가 된 이들의 연대가 있어 가능한 일이다. 이 스토리는 ‘결혼한 여자도 힐링이 필요해’(2015, 두란노)라는 책으로도 출간됐다.

이제 사모의 자리는 덫이 아니라 닻이 됐고, 돛을 달고 날아오르는 사모들은 당당하고 아름답고 행복하다. 꿈 끼 깡을 회복한 사모들이 외친다. “나는 사모다!” 한마디 더 외친다. “니들이 사모 맛을 알아.”

정리=박용미 기자 m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