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주연은 단연 저자다. 책의 역사를 다룬 거의 모든 책은 저자를 중심으로 한 지성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손으로 만져지는’ 한 권의 책이 나오기 위해서는 인쇄, 제본, 종이, 활자, 유통 등과 관련된 다양한 조연이 필요하다. ‘북메이커’는 제목처럼 책을 만드는 사람들, 다른 의미에서는 책의 조연들의 역사다. 영국 옥스포드대학에서 영문학과 책의 역사를 가르치는 애덤 스미스 교수는 구텐베르크가 금속 활판 인쇄술을 만들어 낸 직후부터 서양 인쇄술의 500년 역사를 18명의 핵심 인물을 중심으로 흥미롭게 풀어내면서 책의 미래도 가늠해 본다.
술은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영국인 윌리엄 캑스턴은 독일 쾰른에서 인쇄술을 습득하고 영국으로 돌아갈 때 조수였던 드워드를 데리고 갔다. 네덜란드 이민자 출신인 드워드는 인쇄술의 잠재력을 간파했다. “소수의 필사본 애호가를 훌쩍 뛰어넘어 많은 독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인쇄의 힘을 알아본 것이다. 그는 평생 800종의 단행본을 발간했는데, 1550년 이전 영국에서 출판된 모든 책의 약 15%에 해당하는 양이다.
저자는 드워드의 성공 비결을 두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는 이미 큰 인기를 끌었던 필사본을 인쇄본으로 펴낸 것이다. 저자는 “드워드는 혁명가라기보다는 탁월할 개혁가였다”면서 “정보가 흘러갈 새로운 수로를 개발해 활짝 열어젖힌 것”이라고 말한다. 두 번째는 시각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이다. 드워드가 펴낸 책의 절반 이상이 삽화를 싣고 있다.
우리가 책을 손에 쥐어 들기 위해서는 다양한 작업이 필요하다. 저자는 17세기 초 영국 옥스포드대학에서 제본공으로 일했던 윌리엄 와일드 구스, 18세기 영국 버밍엄에서 인쇄에 적합한 활자체를 개발한 존 베스커빌 등의 이야기를 통해 책 만들기의 필수 공정이 어떤 시행착오를 거쳐 완성됐는지를 돌아본다.
그 사이 흥미로운 두 여성이 있다. 메리 콜레트와 애나 콜레트 자매다. 이들은 영국 성공회 신앙촌 ‘리틀 기딩’에서 인쇄에서 제본으로 이어지는 책이 아닌 전혀 다른 형태의 책을 만든다. 성경의 사복음서 인쇄본 텍스트를 마련하고 가위와 칼로 문장과 구, 절, 심지어 단어 하나씩 잘라낸 뒤 다시 재배열해 풀칠해서 150개 장의 복음서를 완성한 것이다. 예수의 생애를 연대기적으로 통합한 ‘하모니 성경’이다. 네 개의 복음서에 담긴 예수의 생애에 대한 서로 다른 이야기에 조화(하모니)를 추구한 것이다. 당시 영국의 국왕 찰스 1세는 “독특한 구성, 뛰어난 장인 정신, 그 누구와 비교해도 전례가 없는 작업”이라고 칭찬했다. 콜레트 자매의 이야기는 책이 단순히 읽는, 불변의 대상이 아니라 손과 도구로 직접 만지며 재창조할 수 있는 물질적 대상이라는 점을 환기시킨다. 저자는 “인쇄된 책의 비고정성의 놀라운 잠재력을 알아본 것”이라면 “책을 다시 상상하는 진중한 태도를 엿볼 수 있다”고 말한다.
콜레트 자매는 수백 년이 지난 21세기에도 다양한 책 제작자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대표적인 인물이 2005년 영국 런던에서 ‘야만적 메시아’라는 제목의 ‘진(zine)’을 발간한 로라 그레이 포드다. 진은 직접 발간, 배포하는 소규모 독립 간행물을 말한다. 콜레트 자매가 기존 복음서를 오려내 하모니 성경을 만들었듯이, 포드 역시 가위, 칼, 풀을 사용해 기존 인쇄물을 재배치한 뒤 현대 문물인 복사기로 복사해 진을 완성했다. 콜레트 자매가 영국 성공회의 경건한 신앙심을 고취하려는 목적이었다면 포드는 런던 시내를 ‘방랑’하면서 발견한 도시의 파괴적이고 신자유주의적인 현대화 과정에 대한 비판을 담았다. ‘야만적 메시아’와 같은 진들의 메시지는 책 만들기를 신비화하지 않고 민주화하겠다는 결의를 담고 있다. 저자는 “진은 독자에게, 그저 기존대로 조용히 받아들이는 소비자주의나 연구에 머무르지 말고 책을 ‘직접 만들어 보라’(DIY:Do It Yourself)고 권한다”면서 “기업 중심의, 소비주의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상업적인 출판문화에 대한 날카로운 저항”이라고 평한다.
저자는 최근의 전자책이나 온라인 간행물에 대해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는다. 하지만 과거 역사를 통해 디지털과 종이책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는 힌트를 제공한다. 최초로 인쇄된 책인 구텐베르크의 라틴어 성경(1455)을 비롯해 초창기 제작된 책은 손으로 쓴 것처럼 보이려고 애를 썼다고 한다. 인쇄술은 손으로 텍스트를 썼던 문화를 완전히 대체하지 못한 것이다. 초창기 인쇄물 중 가장 인기가 있었던 것은 해마다 나오는 연감(年鑑·almanac)이었다. 1566년에 발간된 한 연감은 “누구나 기억해둘 가치가 있는, 때때로 발생하는 행동, 사건, 사물 등을 적으려고 할 때 이 공간을 사용하라”며 스스로 ‘기록의 공간’이 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저자는 책 역사가 피터 스톨리브래스의 말을 빌려, “초창기 인쇄는 필사 행위를 완전히 죽이려 들기는커녕, 손으로 쓰기를 강력하게 권고했다”고 말한다. 저자는 디지털 문화와 인쇄의 관계를 적자생존식의 투쟁이나 ‘죽음’의 관점이 아니라 책을 새롭게 발전시키는 촉매제로서의 디지털 문화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것을 권한다. “디지털 문화는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방식으로 인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쇄가 또 다른 매체의 가능성에 의해 변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온라인 출판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책을 출판할 수 있다는 선택지를 제공한다.”
⊙ 세·줄·평 ★ ★ ★
·흥미진진한,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책의 역사가 펼쳐진다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상상할 수 있다
·종이책이 가진 ‘물성(物性)’은 쉽게 포기할 수 없다
·흥미진진한,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책의 역사가 펼쳐진다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상상할 수 있다
·종이책이 가진 ‘물성(物性)’은 쉽게 포기할 수 없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