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길원 목사의 고백록] ‘희망’과 ‘망함’ 사이: 총 균 쇠 이야기

입력 2025-07-12 03:07 수정 2025-07-12 07:13
김현석 작(作)의 ‘겨자씨’. 에펠탑 개선문 노트르담 대성당은 프랑스 역사와 문화, 영성을 상징하는 아이콘이자 랜드마크다. 이 셋보다 더 커 버린 겨자씨가 희망이다. 송길원 목사 제공

2만8652명 감염, 1만1325명 사망. 800명 이상의 의료인 감염. 2014년부터 2016년 서아프리카를 휩쓴 에볼라 대유행은 인류 역사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이럴 때 쓰는 인터넷 밈(Meme)이 있다. “희… 망한 건가.” 맞다. 처참한 몰락이었다. 열 번의 팬데믹 가운데 치명률이 가장 높았다. 감염자 절반이 목숨을 잃었다. 무엇이 이토록 비극을 불렀을까. 뜻밖에도 그들의 독특한 장례 문화가 있었다. 고인의 시신을 어루만진다. 입을 맞추며 볼을 부빈다. 포옹으로 작별을 고한다. 사랑의 표현이 바이러스 확산의 통로가 됐다.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에볼라 감염자 20% 이상이 장례 과정에서 감염됐다고 밝혔다. 균(菌)은 총보다 강했고 전쟁보다 무서웠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총 균 쇠’에서 거대한 제국들이 허무하게 무너지는 이유를 밝힌다. 문명의 격차는 인종 차이가 아니다. 지리 환경과 식량 생산력, 병원균의 확산에서 비롯된다는 거다. 결국 문명의 흥망성쇠는 식량 위기에서 시작해 총 균 쇠로 귀결된다. 아스테카 제국은 천연두의 맹공 앞에 무력하기 짝이 없었다. 잉카 제국도 마찬가지였다. 피사로의 작은 군대가 가져온 철갑옷과 총포, 낯선 병원균 앞에 힘없이 무너졌다. 균은 제국보다 먼저 도착했고 제국보다 더 오래 남았다.

균은 성찬식에도 불청객으로 찾아든다. 성찬이 끝나고 나면 교인들 사이에 어김없이 독감이 유행했다. 사제의 섬세한 주의에도 불구하고 같은 그릇에 입맞춤하다 보니 균을 교환한 꼴이 된다. 성찬식 분잔(分盞)은 그렇게 시작된다. 성경을 ‘총 균 쇠’ 프레임으로 다시 들여다본다. 사사 시대를 지나 왕정 시대가 열린다. 역사서를 펼치면 왕국의 흥망성쇠가 총과 균, 쇠의 이야기로 수놓아져 있다. 창세기부터 식량 위기가 반복된다. 아브라함은 기근에 이집트로 피신한다. 야곱의 가문에도 7년 대기근이 닥친다. 이집트는 요셉을 통해 재난을 극복하며 왕국의 기틀을 다진다.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 할 때도 가축과 종기의 전염병, 이(蝨)와 파리 재앙 등 위생과 질병의 위험이 함께한다.

총 균 쇠는 다윗의 생애에도 깊이 각인된다. 인구조사를 감행한 다윗에게 하나님은 노하셨다. 선지자 갓을 통해 세 가지 심판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한다. 3년 기근은 당시 농업 기반의 붕괴로 ‘쇠’에 비유된다. 석 달 동안 원수의 칼에 쫓기는 것은 ‘총’에, 사흘 전염병은 ‘균’에 해당한다.(대상 21:11~12)

이번엔 우리 장례 문화로 시선을 돌려본다. 사람들은 총(전쟁 핵무기 등)과 쇠(첨단 금속·산업 기술)에는 겁을 먹고 매우 놀란다. 하지만 균(전염병)에는 상대적으로 둔감하다. 병원 장례식장 안치실은 때로 시신 창고에 다를 바 없다. 거기다 감염 경로가 명확히 확인되지 않은 채 시신이 다뤄진다. 이로 인해 교차 감염과 2차 감염의 통로가 된다. 죽은 이가 산 자를 위협하는 또 다른 죽음의 현장이 된다.

과거 전통 장례에서는 고인의 옷을 태우는 풍습이 있었다. 무속 민간신앙의 행위였다. 한편으로는 멸균(滅菌) 작업이기도 했다. 지금은 냉장 기술 발달로 항균 코팅과 정밀 온·습도 제어가 가능한 안전한 일인용 안치 냉장고가 등장했다.

이제 다시 묻는다. 희(喜)...망(亡)한 건가. 아니면 “희(希)...망(望)할 것인가.” 희망과 망함 사이, 여호사밧 왕의 기도가 있다. “혹 전쟁(총)이나 전염병(균)이나 기근(쇠)과 같은 재난이 우리에게 닥쳐온다 해도, 우리는 주님의 이름이 머무는 이 성전 앞에 모여 서서, 재난 속에서 주님께 부르짖을 것입니다. 그리하면 주님께서 들으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대하 20:9) 그의 믿음은 구약시대를 관통하는 신앙고백이 된다.

다이아몬드가 말하던 문명 간 격차도 여호사밧의 고백 앞에서는 여지없이 무너진다. 자연환경조차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기 때문이다. 전쟁 전염병 기근도 때로 하나님의 징계인 동시에 돌이킴의 기회였다. 하나님은 이 모든 역사 속에서 구원의 길을 준비하셨다.

마침내 ‘때가 차매’ 예수께서 총 균 쇠가 지배하는 세상에 겨자씨처럼 작고 작은 모습으로 오신다. 성경의 역설 중 역설이다. 작은 것이 온 세상을 뒤덮는다.(마 13:31~32) 가장 작은 씨앗이 가장 큰 나무가 된다. 겨자씨 안에 하늘나라가 숨 쉰다. 나는 오늘도 겨자씨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희(希)...망(望)’하며 소망한다. 마라나 타(주여 오시옵소서)!

하이패밀리 대표
동서대 석좌교수